민주주의 부정하는 모순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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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우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지유샤판 ‘신편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2005년의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와는 그 체제와 본문의 내용에서 세세한 문장표현까지 거의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역사교과서라 할 수 있다. 1997년에 결성된 새역모는 그동안 교과서 판매의 부진과 2007년 후소샤와의 노선 갈등, 새역모의 회장 인선을 둘러싸고 심한 내부 분열을 겪었다. 그 뒤 후소샤와 결별하고 이번에 지유샤를 통해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검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제1차 검정신청 시 516곳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돼 불합격됐고, 재신청 시에도 136곳에 수정의견이 나와 그것을 전부 수정한 다음에야 검정에 합격했다.
지유샤판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미화하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우수한 점과 ‘천황’에게 헌신하는 정신에 초점을 맞춘 기술이 많은 점이다. 둘째로 이에 반해 한국사의 주체성 부정 및 비하, 한국 침략의 정당화 및 합리화, 침략전쟁의 미화 등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한?일 학계에서 부정되는 임나일본부설을 여전히 주장한다든가 한반도 위협론을 강조한다든가 강제로 동원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기술이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가 일본에 위협이 되며 역사적으로 조선이 독립을 보전하지 못해 대륙세력이 일본을 위협했으니 조선을 병합해야 된다는 ‘한반도 위협론’은 일본의 한국침략과 병합의 합리화로 사용되는데, 이러한 내용과 주장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이미 1850년대에 ‘외정론’(外征論)에서 주창한 내용의 현대판이다.
한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역사교과서가 세 번이나 검정을 통과했다는 것은 일본정부(문부과학성)와 우익지식인이 이미 60여년 전에 용도 폐기돼 역사의 부정적 유물로 인식돼 온 ‘황국사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새역모의 역사인식도 문제이지만 일본 문부과학성의 역사인식은 더 큰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지유샤의 역사교과서에는 이전의 후소샤판에 없었던 ‘전함 야마토’와 ‘소화천황의 발언’을 다룬 코너가 새로이 추가됐는데 문부과학성은 이를 그대로 합격시켰다. 전함도감에나 실려야 할 야먀토의 제원과 최후가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게재된 것도 이해되지 않지만, 아직까지 전쟁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이었던 쇼와천황을 2쪽 분량으로 소개하는 역사교과서를 그대로 검정 통과시킨 것은 우려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신봉하는 민주국가를 표방하면서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이러한 일본이 황국사관을 기저로 하는 지유샤의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킨 것은 지난 60여년의 민주주의 국가 일본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모순적인 행위이다. 망언과 사죄를 반복하는 일본정치인의 언행과 교과서 검정 시에 나타나는 일본 정부의 이러한 태도가 결국 이웃 나라에 불신을 준다.
우리는 일본이 보편적 역사인식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침략의 역사를 축소 혹은 미화하거나 이웃 나라의 역사를 왜곡하는 역사교과서가 한?일 우호관계를 손상시키고 양국에 갈등을 가져다주는 일이 없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원우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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