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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상 오보와의 전쟁… 적중률 100% 무한도전"

입력 : 2009-08-13 04:02:47 수정 : 2009-08-13 04: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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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모라꼿’ 진로 정확히 예측… 비껴가 천만다행
국민들 날씨에 민감… 혈압계까지 설치하고 일해
“이번 중부지방 집중호우와 강수량 예보가 적중했습니다. 기상청 예보가 그만큼 정확해졌습니다. 강우량이 많은 탓에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 현관에서 전병성 기상청장은 점점 굵어지는 장대비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 걱정스런 눈빛이었다. 예보대로 내려준 비라 고맙기도 하지만 자칫 큰 피해로 이어질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전 기상청장은 부임 6개월을 넘겼다. 그동안 기상예보 정확도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예보관 전문성 강화, 국민과의 소통 확대, 선진 기상기술 도입 등 갈 길이 아직 멀다”고 말했다. 전 청장의 ‘차분한 진단’과는 달리 기상청 내부에선 자신감과 활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인터뷰는 대만과 중국을 강타해 큰 피해를 끼친 제8호 태풍 ‘모라꼿’ 얘기로 시작했다. 그는 “모라꼿이 한반도를 비껴가서 크게 다행”이라며 “평소 재난방지 인프라 구축과 대비태세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청장은 “모라꼿은 필리핀에서 발생해 대만 동쪽을 거쳐 한반도 남쪽으로 오는 게 정상적인 진로였고, 일본도 그렇게 예측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상하이 쪽으로 갈 거라 예측했고, 정확하게 들어맞았다”고 밝게 웃었다. 지난해 제주도에 설치한 태풍센터도 한몫했다고 한다.

올해 한반도에 영향을 끼칠 태풍 전망도 물었다. 그는 “남태평양 수온이 높아져 태풍이 많이 생성될 것”이라며 “연말까지 2, 3개가 한반도를 지나갈 것으로 예측되지만 변수가 많아 확실하게 말하긴 어렵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지금까지의 소회를 물었다. 그는 “지금은 레저, 산업, 농업 등 전 분야가 고도화돼 국민의 날씨에 대한 관심도가 예전 같지 않다”며 “국민 기대치를 기상청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 발 빠르고 정확한 예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병성 기상청장이 11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청장실에서 인터뷰를 갖고 취임 6개월의 소회와 함께 중·장기 기상예보 발전 방향 등을 밝히고 있다.
날씨에 대한 관심은 일반인부터 대통령까지 예외가 없다. 부임 전까지 환경비서관으로 청와대에서 일한 전 청장은 “지난해 이맘때쯤 비서관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대통령께서 ‘기상청 말을 믿어야 돼 말아야 돼’라고 가끔 말씀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대통령은 건설업에 오래 종사해 날씨에 대단히 민감하단다.

지난해 그가 부임할 당시 기상청은 잦은 오보 소동으로 예보관들이 많이 위축돼 있었다. 전 청장은 “예보관들이 강우량 1㎜만 틀려도 감점당하는 등 많이 위축돼 있었다”며 “자신감이 있어야 예보가 정확해진다는 생각에 틀에 얽매이지 말고 소신껏 일하자고 독려했다”고 말했다.

예보관은 오전 7시30분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한다. 기본적으로 가족과의 생활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또 예보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예보관은 오보를 내면 엄청난 지탄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매우 심하다. 예보관실에 혈압계를 설치해야 할 정도다.

예보관의 능력은 단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래서 전 청장은 예보관이 장기간 예보업무에 종사할 수 있도록 경력개발제도를 만들었다. 또 24시간 휴일 없이 순환근무하는 예보관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2년 정도 근무한 뒤 일반 부서에서 근무하는 순환근무제 도입도 고려 중이다. 여기에 예보관을 전문직위로 분류해 수당 지급도 확대할 생각이다. 인센티브도 필수다. 그래서 최근 과장 승진 대상 2명을 모두 예보관 출신으로 채웠다.

전 청장은 특히 국민 관심이 높은 주말예보 특별대책도 마련했다. 주말예보전담반을 구성했고, 풍부한 경력을 지닌 외부 자문관 2명 영입했다.

미국의 저명한 기상학자인 켄 크로퍼드 교수(오클라호마 대학)를 대통령보다 많은 연봉을 주고 영입했다. ‘기상선진화추진단장’이라는 직책이다. 전 청장은 “기상청 전반에 대한 업무 진단과 선진국의 기상정책과 기후대응체계를 통해 도약에 필요한 체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라면서 “크로퍼드 교수는 30년간 미국 기상청에서 현업 분야에 근무한 경력이 있고, 기상학계에서 두드러진 공로를 남긴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크로퍼드 교수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과 단위 조직을 지원팀으로 꾸려 이달 말부터 본격 가동한다.

산하 기관장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매일 오전 7시50분에 열리는 일기 브리핑을 들어본 전 청장은 이후 모든 관서장을 동참시켰다. 전에는 예보관들만 참석하는 브리핑이었다. 그는 “기관장은 누구보다 예보 감각이 있어야 한다”며 “기관장이 일찍 나오니 조직에 활력도 생기고 긴장도 되고, 또 각 기관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등 좋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예보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전 청장은 “지난해 전 세계 국가별 기상기술 수준을 평가했을 때 9위를 차지했다”며 “우리나라 경제수준 등과 비교하면 적정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국토 대부분이 산악지형이라 예보가 어렵다. 내년에 영국식 수치모델을 도입하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영국 역시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도 영국의 예보 수준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지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전 청장은 “지진은 예보를 못하니까 빨리 탐지해서 대피시키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현재 탐지에서 통보하는 시간이 일본과 대만보다 느리다”며 “2015년까지는 관측 후 50초 이내, 2020년까지는 10초 이내에 통보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관측망 재정비, 통보체계 개선 등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대형 재해도 우려되지만 우리나라는 최근 북한 핵실험 탐지까지 관측망을 넓히고 있다. 지난 6월 북한 핵실험 탐지도 그런 사례였다.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미국으로부터 북한의 핵실험 실시 통보 사실을 전해들은 뒤 바로 기상청에 알렸다. 미국은 이때 “실제 북한 핵실험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기상청은 즉각 북한의 지진정보를 확인한 뒤 핵실험 실시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 한 시간쯤 뒤에 북한의 공식 발표가 이어졌다.

의욕적으로 업무를 추진하고 있지만 걸림돌도 많다고 했다. 부족한 예산이 가장 큰 문제다. 2200억여원의 예산으로 1300명 인건비를 빼면 사업비가 별로 없단다. 장기적 안목에서 기상 발전 대계를 도모하기 어려운 이유다.

전 청장은 “국민들의 기상정보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는데, 예산은 늘 전년 대비 동결 또는 몇 % 인상이라는 가이드라인에 갇혀 있다”면서 “기상청은 기본예산이 워낙 적고 1980년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중호우 때 방문할 당시 신설한 수당 2만원이 그대로일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기후변화 과학대책 업무, 예보 정확도 향상, 대국민 서비스 강화 등을 위해서는 예산이 적어도 현재보다 배는 늘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채희창 사회부장, 정리 나기천 기자, 사진 이제원 기자

■전병성 기상청장 프로필

▲충남 예산 ▲건국대 법학과,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건국대 대학원 법학 박사 ▲행정고시 21회 ▲경제기획원, 환경부 공보관·자연보전국장·국제협력관·한강유역환경청장·수질보전국장, 건설교통부 수자원국장·수자원기획관, 환경부 자원순환국장·환경전략실장, 대통령실 사회정책수석실 환경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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