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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태양 숭배 사상은 민중의 고통과 밀접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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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0-01 10:08:46 수정 : 2009-10-01 10: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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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을 유일한 국조(國祖)로 내세운 왕조는
인민들의 무조건적인 충성과 희생을 강요하는 공통점을 보였다
때로는 ‘나’를 들여다보기보다 타인을 통해 ‘나’를 반추해 보는 게 더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일본은 우리에게 그런 나라다. 언론학자 심훈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는 이 차원에서 기획된 연재물이다. 한림대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인 심 교수는 일본에 대한 1차원적 소개에서 벗어나 일본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안식년을 맞아 올 2월부터 일본 도쿄에 머물고 있는 심 교수의 일본 해석은 깊고 내밀한 방식으로 펼쳐지게 된다. 세계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전직 언론인의 촘촘한 더듬이에다가, 학자로서 다진 역사와 철학에 대한 학문적 깊이가 더해진 글들로 독자를 찾게 된다. 한림대 학보 주간을 지낸 심 교수는 그간 전공서적 외에도 ‘한국인의 글쓰기’와 ‘A+ 글쓰기’로 주목을 받았다.

◇영화 ‘태양의 제국’ 포스터.
‘태양의 제국’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1989년에 개봉된 작품으로 중일(中日)전쟁 와중에서 고아가 된 영국 소년이 본 2차 세계대전 이야기다. 그로부터 4년 뒤, 숀 코너리가 주연한 영화, ‘라이징 선’(Rising Sun)이 상영됐다. 패망 뒤, 50년 만에 더욱 강력해진 모습으로 부활한 일본의 경제 침략을 경고하는 범죄 스릴러 영화였다.

식민 시절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아직도 가슴 철렁하게 하는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의 나라. 더불어 잊혀질 만하면 한 번씩 불거지는 일본 정치가들의 망언(妄言)이 한국인들을 가슴 아프게 하는 나라. 그런 일본은 누가 뭐래도 태양을 숭배하는 ‘태양의 제국’이다. 태양의 여신 아르테미스(天照大神)가 일본을 열었기에 일본인들의 소원 역시, 죽기 전에 한번은 그녀의 사당이 있는 이세진구(伊勢神宮)를 방문하는 것이고.

사실, 일본은 동방에서도 해가 제일 먼저 뜨는 ‘태양국가’다. 이에 따라 서울과 같은 기준시를 사용하는 도쿄는 경도상으로 따져볼 때 서울보다 8도 동쪽에 있는지라 30분 정도 일찍 일출(日出)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런 ‘태양의 제국’을 바투 지켜 보노라면 ‘태양의 후손’이기에 감내해야 할 일본인들의 슬픔이 열도(列島) 곳곳에 말라 붙어 있다. 햇살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애니미즘에 
◇이세진구(伊勢神宮) 축제가 그려진 17세기쯤의 두루마리. 그림의 중간 왼쪽에 붉은 담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건물이 태양의 여신을 받드는 농경신을 모신 외궁(外宮)이며, 오른쪽 상단에 조그맣게 위치한 것이 태양의 여신을 모신 내궁(內宮)이다.
기원한 태양신 숭배 사상이 국민들의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하며 언제나 그들의 희생만을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태양은 달님이 된 누이의 오빠이며, 그리스인들에게는 젊고 수려한 아폴론일 뿐인데, 일본인들의 태양은 쳐다보기만 해도 눈이 멀고 혀가 굳어버리는 그런 존재였다. 해서, 한국의 태양은 햇볕과 햇살, 햇빛과 햇발을 훗훗하게 나눠주는 살가운 대상이지만, 일본의 태양은 ‘히자시’(日指)와 ‘닛코’(日光)만을 앙칼지게 쏘아대는 여신(女神)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오히사마(日神)로 불리는 일본의 태양과 한국의 ‘해님’이 주는 어감(語感)은 천지차이다.

우리네 선조들은 3대(代)가 적선(積善)해야 비로소 남향(南向)이 깃든 집을 얻을 수 있다며 햇볕을 귀하게 여겼는데, 태양의 제국에선 그런 햇볕이 부담스럽기만 했나 보다. 해서, 여름이면 ‘서유기’ 속의 화염산같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일본 본토에서 정남향 주택은 의외로 인기가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선글라스 역시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 자칫, 태양을 부정하는 불손(不遜)으로 오해될까 몸조심하는 것이라면 이는 필자만의 지나친 생각일까? 하지만, 그런 태양 숭배 사상은 결국, 영원한 제국을 꿈꾼 일왕과 신민(臣民)들에게 헛된 망상을 불어넣음으로써 아시아인들은 물론, 자국민들에게도 엄청난 비극을 안겨 줬다.

◇(왼쪽)도쿄 한복판에 자리 잡은 ‘제국극장’ 위에 걸린 일장기. 제국(帝國)이란 단어와 반갑지만은 않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른쪽)도쿄 신주쿠구 다카다노바 부근의 모습. 태양빛이 강한 일본에서는 가급적 정남향을 피해 집을 짓는다. 제각기 다른 각도로 동향에서부터 서향까지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맨션과 빌딩들이 이채롭다.
돌이켜 보면, 유사 이래 태양을 숭배해 온 민족은 비단 일본만이 처음은 아니다. 가깝게는 인도에서부터 멀리는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지구 곳곳에서 아득한 옛날부터 태양을 찬 양하며 신으로 숭배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수많은 신들 가운데 태양신을 유일한 국조(國祖)로 내세운 왕조는 인민들의 무조건적인 충성과 대가 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공통점을 보였다.
◇김일성 포스터.
이집트가 그러했고, 아즈텍이 그러했으며, 잉카와 마야 문명 모두 만인지상 일인지하(萬人之上 一人之下)의 절대왕국을 꿈꿨던 점에서 예의 비극이 시작된다. 가혹한 노예제와 인간 제물 의식, 대규모 순장(殉葬) 등은 태양 숭배가 드리웠던 죽음의 그림자였다.

그러한 비극(悲劇)을 알아서일까? 필자가 살펴본 229개국 가운데 태양을 국기에 그려 넣은 나라는 필리핀, 튀니지, 그린란드 등 모두 17개국에 달했지만, 국기 한가운데 태양만 덩그러니 그려 넣은 국가는 일본이 유일했다. 방글라데시는 초록 바탕에 빨간 원이 있다고는 하나, 이는 자유를 위해 흘린 피를 상징하며, 파란 바탕에 노란 원이 있는 팔라우의 국기에서 노란 원은 달을 의미할 뿐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식민 탈출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자유의 상징’으로 태양을 등
◇점심 시간이면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는 ‘달보기’ 우동.
장시키고 있으며, 건국 이념에 해당하는 상징물을 태양과 함께 그려 넣는 예 도 많다. 그러고 보니,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태양에는 사랑스런 햇살과 함께 눈과 입마저 그려져 일본인의 입장에서 볼 때, 불경(不敬)과 불손(不遜)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3자가 인식하는 일본의 태양은 강렬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어떠한 희극적인 요소나 친화적인 밑바탕도 생략한 채, 하늘을 혼자 차지하고 시뻘겋게 일본 땅을 달구노라면 열도(列島)에 있는 민중들은 갈증에 허덕거리며 자연스레 자세를 낮추게 마련이다. 한데, 북한에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을 ‘민중의 태양’으로 부르며 태양 속에 그려 넣은 것을 보면 태양 숭배 사상이 민중들의 고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긴 한 것 같다.(참고로 김정일은 태양이 들어간 호칭만 5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차마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한 일본인들은 음식에 태양을 넣어 먹으면서 소리 없이 한을 풀어나가는 듯하다. 실제로, 
◇영화 ‘태양의 노래’ 포스터.
덮밥에서부터, 우동은 물론, 라면과 초밥 등에  이르기까지 어디든 들어가는 계란은 일본인들의 못 말리는 태양 사랑(?)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감히 태양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음식 이름에는 만만한 ‘달’이 들어간다. 달보기(月見: 쓰키미) 햄버거를 비롯해, 달보기 소바, 달보기 우동 등이 필자를 안쓰럽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2006년 개봉된 일본 영화, ‘태양의 노래’는 이제껏 나온 여러 일본 관련 영화들과는 조금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색소성 건피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태양빛을 쐬면 죽는다는 10대 소녀의 러브 스토리가 줄거리를 이루는 영화에는 ‘절대신’이자 ‘유일신’인 제국의 태양이 악역(惡役)으로 등장하는 불경(不敬) 코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양을 그리워하는 가사를 곳곳에 내보냄으로써 영화는 결국, 숙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일본적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신화와 국기를 버리지 않는 한, ‘시시포스의 돌’을 산꼭대기로 영원히 옮겨 날라야 하는 굴레를 짊어진 이들이 ‘태양의 후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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