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굿닥터’에 출연중인 정재환은 “무대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하다”며 밝게 웃었다. 이제원 기자 |
“소시민의 삶을 다룬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개그맨으로 활동할 때 ‘꿈의 대화’라는 콩트를 했어요. 회사원이 퇴근길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삶의 애환을 풀어놓는 거였죠. 개그맨으로서 제 마지막 방송이기도 했는데, 애착이 많이 갔던 작품이었어요. ‘굿닥터’가 그 전형과 많이 닮았어요. 오랫동안 (방송을) 안 하니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하더라고요.”
덥석 쥐었지만, 첫 연극 무대라 긴장도 많이했다. 한시도 대본을 놓지 않았고, 틈만 나면 무조건 연습을 이어갔다. 작가, 지배인 등 여러 역할이 ‘정재환’ 식대로 제자리를 잡아갔다. 노력 덕에 연기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잊지 못할 관객평도 얻었다. 조마조마했던 아내는 첫날 공연을 보더니 ‘무대에 올라가니 웃기더라’면서 ‘연기가 좋았다’고 했다. 한 남자 대학생은 ‘생애 최고의 연극이었다’고 그에게 ‘최고’의 평을 전했다.
“여전히 무대에 설 때면 떨려요. 매번 설 때마다 관객이 많이 웃고, 이 무대를 보고 행복하길 기도하죠. 바로 우리 이야기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슬픈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웃을 수 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메시지를 전하는 무대예요.”
그에게 ‘연극’이 분명 또하나의 기쁨이지만, 무대서 내려오면 다시 ‘학생’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그의 전공은 현대사. 재일교포사회의 민족교육이 요즘 그의 관심사다. 내년엔 일본 유학을 생각중이다. 물론 한글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다. 2000년부터 한글문화연대에 참여해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고, 여전히 한글날이 가장 바쁘다.
“‘우리말’ 공부를 시작한 뒤부터 눈에 걸리고, 귀에 걸리는 말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에요. 틀린 게 보이니까요. 학생들이 문자 메시지에선 한글을 편하게 사용하는데 그것까지는 괜찮아요. 다만 규범 언어는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때와 장소에 따라 맞는 구사력과 필력이 있어야죠. 문자 메시지에서 주고받는 말들을 어디서나 사용할 수는 없잖아요.”
당분간도 ‘배움’이 삶을 움직일 것 같다.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 그에겐 전환점이었다.
“공자는 인류의 스승이었지만 평생 학생으로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방송 때문에 대학을 중퇴했는데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늦은 나이였지만 용기를 내서 시작했고, 흘러오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무대 이야기에, 한글 이야기에, 그리고 다시 공부 이야기에 이르자 어느덧 무대에 올라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남편을 한번도 반대하지 않은 아내가 고맙다”고 했다. 그의 뒷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15일까지, 대학로설치극장정미소. (02)3672-3001
윤성정 기자 ys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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