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에 위치한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바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운 융성기에는 바닷길을 통해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를 일본과 중국 등으로 전파했고, 쇠퇴기에는 바다를 통해 밀려오는 외세의 침략으로 국난을 겪기도 했다. 반만년 역사의 고비마다 민족의 영욕을 묵묵히 지켜본 바다다. 최근 이 바다의 유물과 유적을 발굴해 선조들의 생활과 문화를 연구하는 수중고고학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진이 수중 탐사를 통해 드러난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에 대해 고찰하는 ‘바다에서 건진 우리 역사’ 시리즈를 격주로 게재한다.
옛 사람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을 통해 지난 시대 인류의 활동과 그들이 생산한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 고고학이다. 그중 바다나 갯벌, 강, 습지 등 물속에 있는 유적, 유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수중고고학이다.
◇신안 해저에서 발굴된 14세기 중국의 ‘모란무늬 청자 꽃병’. 원나라와 일본을 오가던 무역선 ‘신안선’에는 일본에서 고가에 판매되던 중국의 고급 청자 2만여점이 실려 있었다. |
우리나라 최초의 수중발굴이라고 하는 신안해저유물은 어부의 신고가 계기가 됐다. 1976년 1월 행정당국에 수중 유물 신고가 접수됐으나 담당자는 바다에서 이런 것들이 나올 리가 없다며 소홀히 했다. 그런 와중에 시중에 중국 송나라와 원나라의 도자기가 밀거래되고 있다는 정보가 수사기관에 알려진다. 당국의 수사가 진행돼 도굴범 일당이 검거되면서 신안해저유물의 존재가 알려지게 됐다. 어부의 신고와 도굴꾼의 활개로 1976년 10월부터 신안 수중발굴이 착수됐다.
신안선이 묻혀 있던 조사해역은 물살이 너무 센 곳이라 정조시간대 1시간 정도만 작업이 가능하다. 또한 바다 밑은 개흙으로 뒤덮여 있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해군의 베테랑 심해잠수사도 위치를 찾는 데 한계가 있었다. 수감돼 있던 도굴범을 현장에 투입해 위치를 확인하고서야 발굴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느닷없이 찾아든 수중발굴 시작의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1977년부터 1984년까지 8년간 진행된 신안 보물선 발굴 성과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비교적 양호한 상태의 원양무역선 ‘신안선’ 선체와 용천요, 경덕진요 등 중국의 유명 가마에서 생산한 도자기 등 2만5000여점의 유물이 인양됐다. 배 바닥에는 28t의 중국 동전과 1000여개의 열대산 자단목도 실려 있었다. 또한 이 배가 1323년 6월 중국의 영파(경원)를 출발, 일본을 향해 항해 중이란 사실을 화물표인 목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신안선의 발굴로 우리는 원대 도자기의 최대 보유국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신안해저 유물발굴은 조사가 진행되는 기간에도 도굴사건이 수시로 언론에 보도됐다. 압수된 도굴품만 2300점이 넘을 정도이니 도굴의 폐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도굴의 자행이 심할 때 수사기관에서는 신안유물의 수사에 대한 기피현상도 있었다. 우연이라 하더라도 도굴꾼은 물론 수사관까지 손을 대는 사람마다 액운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2007년 5월 충남 태안군 대섬 앞바다에서 어부가 잡은 주꾸미가 산란한 알을 보호하기 위해 청자에 붙어 있다. 이 주꾸미가 가져온 청자가 계기가 돼 고려청자 2만여점을 인양한 태안 대섬 수중발굴이 시작됐다. |
성낙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 |
신안 해저발굴로 첫걸음을 내디딘 우리나라의 수중고고학은 30년을 훌쩍 넘기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둬 왔다. 이제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은 그동안 16건에 이르는 수중발굴과 수많은 고려청자, 고려시대 선박, 목간, 생활도구 등 옛 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많은 유물이 인양되었다. 언론에 통해 잘 알려진 태안해역에서의 고려 청자보물선과 고려 조운선 발굴성과는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커다란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갯벌 발굴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우리나라 해안의 갯벌은 수많은 바다 생물들의 서식처로 오랜 옛날부터 선조의 중요한 삶의 기반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갯벌에서 1992년 중국 통나무배가 발견됐고 2006년에는 고려 후기 선박인 대부도선이 발굴됐다.
성낙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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