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은 주식 투자할 때나 기억해야 할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족의 휴대전화 사용에도 참고해야 할 줄은 이번 일을 겪고서야 깨닫게 됐다. 다름 아닌 ‘SK텔레콤 유심해킹 사태’ 이야기다.
우리 가족은 SK텔레콤의 충성 고객이다. 세 가족의 가입 햇수를 합치면 60년이 훌쩍 넘는다. 10여년 전부터는 ‘가족결합’이라는 서비스에 가입해 상당한 폭의 요금할인도 받아왔다. 주변에서는 자주 번호 이동을 해주면 혜택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하고, 알뜰요금제가 더 싸다고 조언했지만 ‘전화기를 자주 바꾸는 것도 아닌데 굳이’라는 생각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이번 유심해킹 사태로 온 가족이 동시에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이면서 마음이 흔들리게 됐다. 일단 해킹 소식을 SK텔레콤이 아닌 뉴스로 접하고 유심보호 서비스 가입이 우선이라는 것도 SK텔레콤의 안내문자보다 뉴스나 유튜브로 먼저 알게 됐다는 것이 가족 모두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유심 무상교체 방침 소식에 온라인 예약을 하려는데 대기자가 많아 접속이 잘 안 돼 화가 치밀었다. 예약한 지 며칠 후 ‘유심 확보가 언제 될지 모르니 기다려 달라’는 문자가 왔을 때는 아예 체념해서 그런지 화도 나지 않았다.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우리 가족이 유심해킹으로 직접 피해를 당한 건 없다. 가족 모두가 유심보호 서비스도 가입했고, 피해가 발생하면 SK텔레콤이 100% 보상한다고 했으니 한숨은 돌린 셈이다. 그렇다고 안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SK텔레콤 가입자만 통화나 데이터 접속이 되지 않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상상해 보면 끔찍하다. 당장 가족 간 통화를 할 수 없는 답답함과 두려움이 생길 수 있다. 더군다나 요즘은 휴대전화 없이는 일상생활의 불편이 크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휴대전화를 쓸 수 없게 된다면 온 가족의 사회생활이나 경제생활이 마비됐을 것이다. 이 때문에 온 가족이 한 통신사에 가입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집은 ‘가족결합’으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은 셈이니 통신사도 분산해서 선택하는 게 옳은 일인 것만 같다.
그런데 SK텔레콤 외의 다른 통신사는 보안에 문제가 없긴 한 걸까. 다른 통신사라고 이번 사태와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확신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온 가족이 다 따로따로 다른 통신사에 가입해야 하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더욱 커진다. 전화기를 바꿀 때마다 통신사를 옮기면서 각종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가족결합을 포기하면서 생기는 손실을 보상받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해본다.
어쨌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사과했다고는 해도 SK텔레콤의 늑장 대응은 우리 가족 60년의 충성심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다만 아직 가족결합 해제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앞으로 SK텔레콤의 대응에 따라 가족결합을 유지할 것인가, 분산 가입으로 전환할 것인가가 결정될 듯싶다. 다만 이번 사태를 통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안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고, 그 이유 중 하나는 책임자가 무너진 안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씁쓸함이 남는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