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위쪽에서 태어난 ‘나’는 어두운 돌 틈에 끼여 있다가 물살에 휩쓸려 아래로 떨어진다. 그곳에서 덩치는 크지만 엄마 아빠의 존재조차 모르는, ‘물고기연구소’에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너’를 만났다. 너는 사육되는 학교를 뛰쳐나와 방황하면서 답답한 물속을 떠나 자유롭게 허공을 날아다니는 새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한 너에게 나는 서서히 사랑의 감정으로 스며들지만 피차 말로 꺼내지는 않는다. 안타깝긴 하지만 보이지 않는 끈이 있으니 걱정할 건 없다.
“물속에 사는 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단다. 그렇지 않다면 이쪽 마음이 저쪽 마음으로 어떻게 옮겨갈 수 있겠니? 그렇지 않다면 누구가를 어떻게 사랑하고 또 미워할 수 있겠니?”(81쪽)
연어들이 먼 바다에서 알을 낳기 위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어머니와 우리가 끊어지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는 이치와 같다는 성찰이다. 바다로 나아가야 하는 순리를 거스른 채 자꾸 폭포 위쪽 세상만 곁눈질하는 어린 너를 초록강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껴안으며 말한다. “연어들은 기억의 힘으로 살아간단다. 다시 여기로 돌아오기 위해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거고….” 가야 할 운명의 길을 알게 된 ‘너’는 바다에 이르는 험난한 여행의 리더가 된다. 민물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강의 하구는 거대한 염분(鹽分)의 벽이어서, 적응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제 5000마리의 연어들은, 너와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벽을 통과해야만 한다.
시와 소설 혹은 동화의 중간 영역에서 안도현 특유의 에스프리를 동원해 맑고 따스하게 전개하는 문장은 단순히 이야기만을 따라가게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밤하늘에서 별들이 연어 무리처럼 떼를 지어 총총 눈을 반짝이는 대목에서 내가 “별들이 참 많이도 깜박이는구나”라고 중얼거리자 ‘너’가 “별들이 깜박이는 건 울고 있다는 뜻이야”라고 대답하게 하는 건 시인의 탁월한 미덕이다. 강가에 서 있던 자작나무에게는 “나무의 그림자는 나무의 뒷모습”이며 “오래 서 있으면 무겁고 힘드니까 또다른 나를 바닥에 잠시 내려놓는 거”라고 말하게 한다. 수달이 연어에게 가르치는 이런 사랑법은 또 어떤가.
“스며드는 것은 소리가 나지 않아.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지. 침묵으로 말하는 거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너한테 수없이 많은 말을 하는 거지. 우리가 강물에 스며드는 것처럼, 물이 우리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75쪽)
거대한 연어떼가 군무를 추면서 바다라는 벽으로 스며들어가는 마지막 대목은 교향곡의 피날레처럼 장엄하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장르를 국내에 정착시킨 이 ‘연어’ 시리즈는 해외 독자들도 겨냥하고 있어 그 반향이 기대된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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