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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잇는 사람들] <17> 방짜유기장 김문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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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6-09 00:12:46 수정 : 2010-06-09 00: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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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쇠 덩어리 밤샘 매질로 ‘아주 쓸만한 그릇’을 빚다 ‘아이구, 저 놈 참 방짜네!’ 하는 짓이 기특하고 똑똑해 보이는 어린 녀석에게 옛날 어른들이 환하게 웃으며 던지던 대사였다. ‘방짜’라는 독특한 어감 때문에 그 의미를 그냥 무심히 ’괴짜’ 정도로 마음대로 해석했는데, 경기도 무형문화재 10호 ‘방짜유기장’ 김문익(67)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비로소 그 ‘방짜’의 의미가 선명해졌다.
◇방짜유기장 김문익씨가 완성된 촛대를 살펴보고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김씨는 12살에 유기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방짜유기 만들기의 한길을 걸어왔다.
“방짜는 옛날 합금을 때려서 만드는 게 특징이지요. 주물 같은 건 우리는 할 줄도 모르고 배우지도 않았어요. 하다보니까 56년이 흘러버렸네요.”

구리와 주석을 적정 비율로 혼합해 녹여낸 놋쇠 덩어리를 장정 6명이 호흡을 맞춰 메질을 해서 그릇과 악기를 만들어내는 게 ‘방짜유기장’의 일이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사용된 놋그릇은 그 재료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구리에 아연을 넣은 주동과 아연 대신에 주석을 넣은 향동이 그것인데, 향동이 더 고급의 놋쇠이다. 이는 방짜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주동에는 소량 함유되기 마련인 납 등의 불순물이 방짜에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무독성의 재료이기 때문에 식기의 재료로 널리 애용되어 왔다. 그러니 사람을 보고 ‘방짜’라 하면 “아주 쓸 만한 그릇”이라는 칭찬이다.

◇전수조교 이춘복씨가 높은 열에서 쇠를 가열한 뒤 식히기를 반복하는 담금질 작업을 하고 있다.
김문익씨는 양반 집안인 안동 김씨 출신이었지만 천한 사람이나 배우는 유기 기술이라 하여 주변에서 만류하는데도 12살 때 유기장 최두건 공방에 입문했다. 이후 이곳에서 13년간 기술을 연마했고 다시 무형문화재 이봉주 휘하에 들어가 17년 동안 평북 정주의 납청방짜 기법도 배웠다. 그의 능력은 1992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으로 인정받았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그가 만든 징과 꽹과리를 오랫동안 사용했고, 1980년대에는 내리 7년 동안 한국문화재협회 전승공예전에서 입상한 이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담금질을 마친 유기는 매끄럽게 다듬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60년대에는 꽹과리 소리가 저음이었는데, 먹고 살만해진 요즘에는 높은 소리로 만듭니다. 옛날에는 농촌에서 논매기할 때 힘을 덜 들게 하느라고 농악을 치다 보니 소리가 저음이었는데, 요즘은 사물놀이패들이 늘어나면서 현대음악과 맞추다 보니 배고픈 시대도 아니어서 소리가 자연스럽게 높아진 거죠.”

◇김씨가 완성된 유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광을 낸 유기가 거울처럼 밝고 깨끗하다.
방짜로는 그릇 말고도 꽹과리나 징 같은 악기도 만든다. 김문익의 방짜 악기는 특히 성가가 높은 편이다. 그는 악기를 만들 때 ‘울음깨기’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소리잡기’의 공정에서 첫 울음을 어떻게 ‘깨우느냐’에 따라 징이나 꽹과리의 품질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구리 72%와 주석 28%의 비율로 용해해 만드는 일반적인 방짜와는 달리 악기를 만들 때는 주석 함량을 배로 높이고 금과 은을 섞기도 한다. 그는 “덕수패 사물과 손발을 맞추다 보니 금과 은까지 넣게 됐다”면서 “금은 소리를 부드럽게 하고 은은 높은 소리를 내게 한다”고 설명했다.

◇김씨(왼쪽)와 전수조교 이춘복씨가 달궈진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바대기(둥근 놋쇠덩어리)를 만들고 있다.
전통 방짜 작업의 하이라이트는 장정 6명이 심야에 새벽까지 합금에 메질을 하는 장면이다. 용광로에서 꺼낸 합금을 용도에 맞게 오려낸 뒤 적당히 다시 가열을 해서 두들겨 성형을 하는 과정이 바로 이 메질 장면이다. 망치질 3명, 집게 1명, 풍구질 1명, 쇠달구는 사람 1명이 호흡을 맞추어 정신을 집중해서 쉬지 않고 최소 3시간 이상을 작업을 해야 한다. 지금도 김씨는 이 두드리기 작업을 할 때 만큼은 잡념이 들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하는데, 두드리는 리듬과 강약에 따라 그릇과 악기의 질이 미세하게 달라진다.

“옛날에는 관솔불을 밝혀놓고 밤 11시부터 사람들 모아서 일을 시작했는데, 한 사람만 빠져도 일을 못했지요. 이젠 달라진 시대를 따라갈 수밖에 없지만 진짜 방짜들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허전합니다.”

낮에는 방짜에 반사되는 빛 때문에 일을 하기가 힘들어 밤에만 작업을 했다는 방짜유기장 김문익씨. 그가 평생 해온 작업이니 진짜 방짜 만드는 일이야 어렵지 않을 터이지만, 인간 ‘방짜’들은 이제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글 조용호 선임기자, 사진 이종덕 기자 salmo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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