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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잇는 사람들] <19>중요무형문화재 제103호 완초장 이상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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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8-17 23:05:22 수정 : 2010-08-17 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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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마다 자연미·정감 물씬… ‘54년 왕골인생’ 명품으로 오롯이 완초란 우리말로 왕골이라고도 하는데, 줄기가 삼각이며 벼목의 한두 해 살이 풀로 길이가 1∼2m에 이른다. 전국에 서식하지만 강화지역의 완초가 부드럽고 촉감이 좋아 최고로 친다. 완초 제품은 여름에는 땀을 흡수하고 겨울에는 냉기를 막아주는 등 실용성이 뛰어나 오래전부터 사용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완초제품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사용되었고 고려와 조선의 왕실에서도 사용될 정도로 중요한 제품이었다. 

◇씨줄과 날줄로 생을 엮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3호 완초장 이상재씨가 나무 망치로 왕골 작품에 골을 치고 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고 올해로 54년째 온갖 완초 작품을 만들어 온 그는 “눈이 보이고 손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완초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8월, 강화읍에서 조금 떨어진 소형 아파트에서 완초 공예 한길만을 걸어온 중요무형문화재 제103호 완초장 이상재(67)씨를 만났다. 공방으로 사용하는 그의 집 현관에는 완초 묶음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거실과 안방에는 꽃삼합, 동고리, 사주함, 반짇고리와 같은 갖가지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올해로 54년째, 그는 화문석을 제외한 온갖 완초 소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완초공예품을 현대 감각에 맞게 변화시킨 가방, 구두, 모자.
그가 처음 왕골을 접한 것은 열 네 살 때라고 한다. “제가 태어난 교동 섬 일대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완초 제품을 만들던 때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또한 완초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를 졸라 왕골 잘 매기로 소문난 고 유형식 할아버지를 찾아가 완초 공예를 배웠습니다.”

◇꽃삼합. 꽃삼합은 우리 조상이 음식을 담아두거나 바느질 광주리로 사용하던 한 개의 합에서 시작된 것으로 크기를 달리한 단합 3개가 한 세트로 만들어진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던 그로서는 한자리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이 일이 적성에 맞았다. 뛰어난 손재주와 근성으로 왕골을 만들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그는 교동면에서 열린 왕골경진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이것이 그를 본격적인 완초장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이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완초 기술을 가르치다가 지금의 전수교육조교이자 부인인 유선옥(56)씨를 만났다. 유씨는 이씨에게서 완초 공예를 배우던 동네 처녀 중 한 명이었다. 누구보다도 성실한 이씨의 모습에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된 유씨 또한 1999년 전승공예대전에서 완초로 만든 ‘다과세트’ 작품으로 대통령상까지 받은 명인이다.

이씨는 남들이 만들지 않은 새로운 작품에 대해 꾸준히 연구했다. 그에게 완초는 단순한 풀이 아니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낸 인생이다. 이씨의 손 끝에서 만들어진 완초 작품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품에 비해 올이 훨씬 고르고, 전체적으로 정연하다. 새겨 넣은 글자와 무늬의 배치는 자연스럽고 색감 또한 차분하게 안정돼 있다.

이러한 뛰어난 공예 기술로 이씨는 경기도 내의 각종 경진대회는 물론이고 1994년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 동상 수상 등 여러 공예품 경진대회에서 수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96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3호 완초장으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다리가 불편한 이상재씨의 두 손은 강하면서 섬세하다.
이상재 완초장이 왕골로 만들어 내는 것은 다양하다. 꽃삼합, 동고리, 사주함은 물론 모자, 가방, 구두, 휴대전화 고리까지 젊은 감각을 앞세운 물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폐백 동고리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만들기도 힘들고 인기가 좋은 소품이 바로 폐백 동고리라고 한다.

“예전에는 네 모서리가 반듯한 사각함밖에 없었습니다. 20년 전부터 네 모서리가 동그란 동고리를 만들었는데, 흉내를 내는 사람이 많았지만 제대로 만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입체적으로 수를 놓은 ‘포도문항아리’(바닥 : 21㎝, 높이 : 21㎝).
완초 제작에는 기구를 이용하는 것과 손으로 엮는 방법이 있다. 돗자리와 방석은 기구로 많이 짜고 원형 방석과 소품은 대체로 손으로 만든다. 현재 이씨는 오로지 손으로 완초 작품을 만들고 있다. 

◇동고리. 동고리는 동글 납작하게 만든 작은 고리짝으로 가장 만들기 힘들면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소품이다.
“완초 공예는 예민한 손놀림과 인내심이 없으면 해낼 수 없습니다. 화문석 한 장을 짜는 데 60만번 이상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능숙한 사람이 밤낮없이 만들어도 보름 이상이 걸립니다. 소품이라 해도 최소한 수십만 번의 손길이 필요하고 크기와 무늬에 따라 일주일에서 열흘 이상 걸리기 마련입니다.”

◇화방석. 화방석은 완초 공예에 입문해서 가장 먼저 만들게 되는 제품인데, 이 또한 손놀림의 숙달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렇듯 완초 공예는 결코 조바심을 내서는 안 될 일이다. “3년은 배워야 겨우 방석 정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수십일 걸려 노력하여 만든 제품이지만 예전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전통 공예 기술을 전수받는 사람들에게 주는 보조금도 많지 않아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돈벌이가 되질 않습니다. 더욱이 플라스틱 제품과 중국의 값싸고 질낮은 제품이 그나마 좁은 시장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올이 고르고 무늬의 배치가 자연스러운 난초항아리(18×18×32㎝)
이씨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기술을 배우려는 이수자와 전수생들이 적지는 않으나 대부분 50, 60대 여성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완초공예를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것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그의 방에는 최근의 작품부터 십수년도 더 된 것들까지 다양한 종류의 완초 작품들이 가득 놓여 있다. “제가 직접 가르칠 수 없더라도 완초 공예를 배우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연구하면서 완초 공예를 유지하길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완초 공예는 섬세한 기술을 필요로 하기에 60세가 넘으면 손놀림과 시력이 나빠져 힘들다고 한다. 고희(古稀)를 앞둔 이씨의 현관과 방에는 언제나 수북이 완초가 쌓여 있다. “눈이 보이고 손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완초장 이상재씨는 두꺼운 안경 너머로 쉼 없이 돌아가는 손놀림을 주시하며 오늘도 자랑스러운 우리 전통을 엮고 있다.

글·사진=송원영 기자 sow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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