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등 오남용도 심각… 가정·학교·언론 각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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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인터넷 카페에서 회원들이 주고받은 댓글의 일부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알기 어렵다. 10대로 추정되는 회원들은 유사 문자를 나열하며 아무 문제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이 문장은 ‘우리 이쁜이 사랑하는 거 알지? 그럼 난 이만 갈게’ 정도로 해석된다고 한다. 욕설로 추정될 뿐 해석조차 안 되는 표현도 수없이 쏟아진다. 병맛(어이없음·‘병신같은 말’), 레알(정말), 열폭(열등감 폭발) 등 비속어와 은어는 점잖은 축에 속할 정도다.
서울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수사관은 “청소년들을 조사할 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되물어야 하는 상황이 많다”며 “휴대전화 문자, 인터넷 메신저 탓인지 조사를 다 빼먹고 축약해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씁쓸해 했다. 인터넷 언어가 실제 대화에 이용되면서 정상적인 언어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언어 사용과 의식이 매우 혼탁해지고 있다.
9일 국립국어원의 언어의식 조사에 따르면 욕설과 비속어를 ‘(특별한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쓴다고 답한 응답자는 5년 전에 비해 11배 이상 늘었다. 국민이 욕설이나 비속어 사용에 그만큼 무뎌졌다는 의미다.
소설가 은미희씨는 “욕설과 비속어는 상대를 해치는 ‘주문’(呪文)이다. 이런 말을 내뱉을 때는 나쁜 기운이 자신의 몸을 해치고 지나간다”며 “특히 아이들 인격 형성에 치명적”이라고 경고했다.
경북대 남재일 교수(신문방송학)는 “사회적으로 기존 권위나 권력에 대해 축적된 불만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히스테리적 증상으로 판단된다”며 “어찌할 수 없다 보니 욕설과 비속어로 분출된다”고 분석했다.
외래어·외국어 오남용에도 국민들 인식은 무감각해지고 있다. 주민센터·치안센터·119안전센터 등 행정기관 이름은 물론 KORAIL, KT&G, KRA 등 공기업 명칭이 속속 외래어로 바뀌었다. 로스쿨, 매니페스토, 스태그플래이션, 키코 등 외국어도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
서울대 민현식 교수(국어학)는 “‘자세하다’고 하면 되는데 ‘디테일하다’가 유행어처럼 퍼진다”며 “모어를 존중하고 모어로 말하겠다는 의식을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높임말(경어)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서비스업종에서는 ‘만원이세요’, ‘누우실게요’처럼 ‘과잉 높임말’이 아무 생각 없이 쓰인다. 연세대 김하수 교수(국문학)는 “경어 사용이 재구성되고 있다”며 “이대로 방치하면 잘못된 경어 사용이 굳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 대중매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재일 국립국어원장은 “정부가 해마다 다양한 계획을 세우지만 금방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한다. 언어 예절은 특히 가정과 학교가 담당할 몫”이라고 말했다.
김하수 교수는 “신문과 방송의 책임이 크다. 언론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설가 하성란씨도 “젊은층의 언어습관을 문학이 바로잡기는 힘든 것 같다. 이제 대중문화에서 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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