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선 국정원장 사퇴 촉구 통상적인 ‘정보 수집 활동’의 일환인가. 아니면 이명박 정부의 성과주의 외교가 빚은 ‘무리한 정보 절취’인가.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투숙 호텔에 잠입했던 괴한이 국정원 직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보 수집 활동의 ‘적정 범위’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특별사절단 숙소에 침입, 노트북에 직접 손을 대는 등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정보전’ 장면들이 실제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냐는 것이다.
일단 국익이 걸린 국가 간 협상에서 상대 정보를 빼내는 것은 정보기관의 ‘공공연한 직무 활동’이란 주장이 있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21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협상차) 러시아로 갈 때 호텔 방에서 따로 천막을 치고 통화하는 것도 전자파 차단을 위한 것”이라며 “남한이 북한에 갈 때도 통신 보안에 최선을 다한다. 거꾸로 북한이 남한으로 내려오면 우리가 도청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 건도 통상적인 정보 활동의 일환’이란 취지다.
실제로 1995년 미국과 일본 간 자동차 협상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일본 측 기밀회의를 도청한 사실이 밝혀진 적도 있다. 일본은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일 정상회담까지 취소하며 강하게 항의하는 등 양국 외교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익이 걸린 통상 협상이라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특히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아무리 국익을 위한 일이라도 ‘위법한 정보 수집 행위’ 자체가 엄격히 금지됐다는 게 당시 국정원에 몸을 담았던 인사의 증언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민주당 신건 의원은 통화에서 “적어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이런 일은 하지도 않았고, 할 이유도 없었다”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터졌다”고 개탄했다. “‘국가 안보’가 걸린 중대 사안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나서야 하는 게 정보기관의 임무지만, 그런 일도 아닌데 일반 ‘잡범’보다 못한 일로 국가 위신을 추락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신 의원은 그러면서 “‘적정(적국 정보) 수집’이라는 국정원 핵심 업무는 등한시한 채 협상 상대방 노트북이나 훔쳐 정보를 빼내려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일갈했다.
야당은 일제히 “국제적 망신”이라고 비판하며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최재성 의원은 “국정원이 내곡동 흥신소로 전락한 사건”이라며 “납득하기 어렵고 용서하기 어려운 국정원의 실수를 분명히 규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동철 전략기획위원장은 “이렇게 땅에 떨어진 대한민국의 국격을 회복하는 길은 국정원장을 즉각 파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도 “정보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 대통령 최측근이란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고 국정원장 사퇴를 요구했다. 여야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이르면 다음주 국회 정보위원회 소집을 추진하고 있다.
김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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