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작품 ‘절대 보지 마세요! 절대 듣지 마세요!’ 그림책 출간
◇병상의 해맑은 변선진양. 졸업 후 두 달 앓다 훌쩍 떠났다. |
◇변선진의 그림책 표지. |
채 피지도 못하고 스러진 열 아홉살 소녀가 남기고 간 말이다. 지난해 대안학교인 금산간디학교를 마치며 졸업작품으로 제출한 그림책 ‘절대 보지 마세요! 절대 듣지 마세요!’의 출판 소식에 날 듯이 기뻐하던 변선진(당시 19세)양은 지금 세상에 없다. 머리가 아파 진찰차 잠시 들른 병원에서 ‘재생불량성빈혈 중증’이라는 병명으로 입원한지 불과 두 달만인 작년 4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변양의 졸업작품은 애초의 작가 소개란엔 없던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고 있습니다’란 문장을 덧붙인 채 최근 번듯한 그림책으로 태어났다. 왠만한 유명 작가도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기는 쉽지 않은데, 변양의 그림책은 짜임새 있는 글과 그림 구성, 재치있는 표현과 진지한 메시지가 빛난다는 평가를 받는 수작이다.
◇변선진의 그림책 삽화 중에서. |
“사랑하는 이 세상 모든 엄마 아빠들에게/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긴데/ 어른들은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었나 봐./ 아무것도 몰라./ 정말로 내가 무엇 때문에 우는지 말야!”로 시작하는 변양의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책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표현한 그림책이지만 메시지는 다분히 어른 독자들을 향하고 있다.
책은 한 소녀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어른들을 향해 답답한 속내를 하소연하듯 털어놓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투박하지만 재치있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 함께 펼쳐진다. 변양 자신을 형상화 한 듯한 주인공 아이는 피망을 먹는 일, 치과가는 일과 주사맞는 일, 길에서 마주친 서양 사람의 질문에 영어로 답하기, 어둠 속 시계소리, 오밤중에 나타나는 괴물 등 눈에 보이는 두려움의 대상들은 별거 아니라면서 정말로 무서워하는 건 따로 있다고 말한다.
◇변선진의 그림책 삽화 중에서. |
제목 ‘절대 보지 마세요! 절대 듣지 마세요!’는 어른들이 뚜껑을 열어놓은 맨홀에 빠진 아이가 “제발 여기 좀 봐주세요! 제발 내 말 좀 들어주세요!”라는 간절한 바람에서 나온 반어적 표현으로 해석된다.
◇금산간디학교 후배들은 지난달 변선진의 1주기를 맡아 수목장을 한 그의 나무 앞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
변양은 또한 간디학교 재학중 격월간 ‘민들레’(제71호)에 기고한 친언니 변혜진씨를 인터뷰한 글에서 “‘어른’이란 주제는 열여덟살이던 2학기 중간발표 주제로 삼았을 만큼 깊이 고민한 주제이기도 하다. 도대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때 나는 ‘누구나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받은 어린아이’에 대해 고민하고 내 속에 있는 상처받은 어린아이와 만나고 ‘상처와 눈물 없이는 어른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변선진의 마지막 모습. |
“난 지금 행복해. 내 내면과 소통하고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있으니까. 그리고 꿈꿀 수 있어서 행복해. 꿈을 꿀 때는 정말, 너무 두근거려. 결코 그것이 헛된 생각이라고 여기지 않아. 누가 들으면 너무 이상적이고 추상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꿈이 현실로 하나하나 다가오는 게 앞으로도 자신 있거든. 그게 행복해. 그리고 그걸 공유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해.”
어른이 되길 주저한 변선진, 그는 지금 없지만 그의 체취는 여전히 세상에 가득하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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