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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의식해 소유하고 싶은 현대인들의 소비문화 고발

입력 : 2012-02-24 19:56:51 수정 : 2012-02-24 19: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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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작가 미카엘 올리비에 ‘나는 사고싶지 않을 권리가 있다’
백화점 세일때 전의 불태우고 돌진하는 그들의 광풍에 분노
위트있는 화법과 생생한 묘사
“우리 뇌는 우편함처럼 될 거야. (광고)전단으로 꽉 차서 진짜 우편물은 넣을 수도 없는 우편함 말야! 진짜 메시지는 못 넣는다고!”

‘뚱보, 내 인생’의 프랑스 작가 미카엘 올리비에가 이번엔 현대인의 소비문화를 정곡으로 찌른다. 살(몸)과 인생, 사랑의 함수관계를 경쾌하게 그려낸 전작 ‘뚱보, 내 인생’으로 한국에도 독자층을 형성한 이 작가의 신작은 ‘나는 사고 싶지 않을 권리가 있다’(바람의 아이들 펴냄)다. ‘내 몸은 과연 나에게 무엇인가’에서 이제 ‘소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려낸 청소년소설 ‘나는 사고 싶지…’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 교실을 점령한 노스페이스 물결 속에서 한 등급 더 비싼 노스페이스를 ‘사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면 ‘나는 사고 싶지…’의 주인공 이야기에서 출구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전기 없이 2년간 살아보기, 혹은 쇼핑하지 않고 한 달간 살아보기 같은 논픽션 드라마의 생생함과 메시지를 성장소설의 스토리에 녹여낸 이 책은 단숨에 읽힐 만큼 가독성이 뛰어나다. 교사인 부모의 파견근무 때문에 프랑스를 떠나 아프리카 섬나라 마요트에서 3년간 살게 된 중학생 소년 위고의 섬생활과 그 이후의 혼란를 그린다. 예민한 사춘기 소년 위고에게 마요트 섬과 프랑스는 양 극단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지만, 위고는 양쪽 어디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경계인이 된다. 주말 해변 여행에서 바다거북들과 함께 헤엄친 순간을 원주민 친구들과는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위고는 좌절한다. “반 친구들 중에 바다거북을 본 애는 한 명도 없었다. 섬의 몇몇 해변에 바다거북이 있다는 것도 애들한테는 전설 같은 얘기라는 걸 알게 되자 어이가 없었다. 자기들이 사는 섬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바닷가에 있는 호화로운 호텔에 가서 하룻밤을 잘 돈이 없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그런 생각조차 안 해보는 것이다.”


세일 때마다 백화점에 몰려드는 사람들. ‘나는 사고 싶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소비’에서 정체성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소비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편 프랑스로 돌아온 위고는 백화점 세일 때마다 전의를 불태우며 돌진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저택과 컬렉션들을 사모으고 자랑하기 바쁜 부모를 이해할 수 없다. “세계 인구의 20%가 지구 전체 자원의 86%를 소비한다. 어떤 물건을 필요성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남들이 보이는 반응 때문에 손에 넣고 싶어한다”며 위고는 가족들의 무한 소비주의 광풍에 분노한다. 급기야 그가 신은 공정무역상품 ‘블랙스포트’ 운동화조차 학교의 유행이 돼버리자 위고는 ‘광고청소부’가 되기로 한다. 광고판에 ‘광고=정신적 강간’이라는 문구를 페인트칠하는 광고반대 게릴라가 된 그에게 부모가 “넌 도대체 뭐가 되려고 이러냐?” 묻자 위고는 이렇게 답한다. “나중에, 난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설은 성인 독자들도 매료시킬 만큼 위트있는 화법과 상황묘사, 생생한 이야기 솜씨로 빛난다. 2012년 서울에 대한 풍자로도 유효할 예리한 소비세태 묘사, 청소년기 무분별한 첫경험에 대한 도취와 회한을 풀어나가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실감난다. 가족을 공격하는 것 말고는 이 ‘소비 권하는 사회’에 저항할 방법을 모르는 위고에게 “통찰력을 훌륭한 무기로 만들려면 조금쯤은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라”고 조언하는 사서 선생님, 두번째 사랑에 빠진 위고가 “지난번에 서툴게 훔친 키스는 셈에 넣지 않는다. 전에 다른 세상에서 한 키스가 있기는 하지만, 이게 내 생애 첫 키스다”라고 독백할 때 독자의 입가에 웃음이 머문다.

프랑스 공영방송 FR3 청소년 소설 부문상을 비롯해 6개의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올봄 프랑스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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