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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가 좋아하는 공간, 따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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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4-17 20:25:46 수정 : 2012-04-18 08: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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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오원춘 등 집 근처서 범행대상 물색
후미진 지역·미로처럼 얽힌 재개발지구 등
강력범들이 선호하는 '그들만의 공간' 존재
범죄는 폭력의 극단적인 형태다. 그 극단에 서있는 사람들을 ‘범죄자’라고 한다. 범죄자가 어지럽게 널린 골목길, 낙서가 방치된 담벼락, 외진 원룸촌을 돌며 범행기회를 포착하는 사이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의 지배를 받는다. 범죄학자들은 이들 범죄자가 따르는 공간의 법칙을 연구해 ‘지리적 프로파일링’이란 이름을 붙였다. 최근 벌어진 각종 강력 사건도 이런 법칙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폭력을 유발하고 강화하는 ‘그들만의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17일 세계일보 취재팀은 최근 발생한 ‘수원 20대 여성 토막살인사건’, ‘부산 사상구 여중생 납치 살인사건’, ‘서울 수유동 방화 살인사건’ 등 3건의 강력사건 발생지역에 대한 현장 답사와 전문가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잔혹한 연쇄 범행은 ▲주거지 35.34㎞ 이내 ▲교통로에 바짝 붙은 후미진 지역 ▲저개발 지구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강력범이 범죄를 저지르기 좋아하는 공간이 따로 존재하고, 우리 사회가 이 같은 공간을 줄여나간다면 범죄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김길태가 범행한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일대. 골목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김길태 같은 토박이들만이 안다.
◆“담당 경찰관도 골목길을 익히는 데 2∼3개월 걸려”


아무렇게나 버려진 실타래를 연상케 했다. 어디에서 어디로 골목이 이어지는지, 골목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김길태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부산시 사상구 덕포동 재개발 구역의 첫 인상이었다. 사람 한 사람이 다니기에도 비좁은 골목도 있고, 시멘트로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계단으로 억지로 이은 듯한 골목길도 있었다.

“이곳은 아까 지나쳐 왔던 곳인데, 모르겠죠?” 길 안내를 맡은 경찰관의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언제 지나쳐 온 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안내를 받지 않으면 하루 종일 같은 곳을 맴돌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새로 부임한 경찰관도 이 골목길을 다 익히는 데 2∼3개월이 걸린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2010년 3월 7일 덕포동 인근 가정집 물탱크에서 한 여중생 시신이 나체로 발견됐다. 3일 뒤 인근 덕포시장에서 범인 김길태가 검거됐는데, 덕포동 일대는 그가 어릴 때부터 살아왔던 익숙한 지역이었다.

임준택 동국대 교수가 연쇄살인범 유영철 등 강력범 12명이 저지른 118건의 범죄를 분석하자, 범인들은 주거지에서 범행 현장까지 평균 35.34㎞를 이동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수사망을 피해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 범행을 저지르는 미국의 강력범보다는 이동거리가 짧았다. 100m∼4㎞ 이내는 27.1%, 4.1∼10㎞는 24.6%, 10.1∼40㎞는 28.8%로 파악됐다. 김길태도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던 빈집을 범행지로 골랐다.

최근 검거된 서울 수유동 방화 살인 사건의 주범 강모씨도 이 같은 공간의 법칙을 철저히 따랐다. ‘가장 적은 노력으로 범행을 저지른다’는 강력범 범죄수행 법칙을 거스르지 않았다고 했다. 강씨의 첫 범행지는 그의 집에서 1㎞, 두 번째는 7㎞ 떨어져 있었다. 가능하면 집 근처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는 뜻이다.

임 교수는 “범행지가 자택에서 멀리 떨어지면 경찰의 의심을 피할 수는 있으나, 피해자를 장악하고 우발적 사고에 대비할 수 없게 된다”면서 “강력범은 가능하면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주거지 근처에서 희생자를 물색한다”고 설명했다.

‘수원 20대 여성 토막살인 사건’의 주범 오원춘은 아예 자기 집안을 범행 장소로 선택한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오원춘이 범행한 수원 팔달구 지동 일대. 오원춘이 범행한 일대는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집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이런 모습은 무질서한 곳에서 강력범죄가 더 잘 일어난다는 프로파일러들의 말과 일치한다.
출처:네이버 지도
◆“범인이 좋아하는 공간, 따로 있다”


범인들이 거주하는 곳 인근에 있는 ‘도심 재개발지’는 범행 장소로 사용되기에 더없이 적합한 곳이다. 오원춘이 길을 가는 20대 여성을 토막살해한 수원시 팔달구 지동과 김길태가 여중생을 납치해 살해한 부산 사상구 덕포동은 모두 골목길이 얼기설기 얽혀 밤에 다니기 어려운 재개발 지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도심 재개발지다 보니 이웃 간 교류가 별로 없어 범죄신고가 잘 들어오지 않는 특성이 있다.

남기범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개발 지구가 인정이 넘친다는 건 TV매체가 만들어낸 편견”이라며 “경제학에서는 저개발지일수록 각자 생존에 바쁘기 때문에 이웃 간의 신뢰가 낮고 서로에게 무관심하다는 연구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오원춘이 20대 여성을 끌고 가는 동안에도 “부부싸움을 하는 줄 알았다”는 이웃들의 증언이 이 같은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구획정리가 안 돼 미로같이 얽힌 골목길은 치안력의 침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경찰 관계자는 “김길태가 범행한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일대는 차량순찰이 불가능할 만큼 골목길이 좁다”면서 “워낙 미로처럼 얽혀 있어 이곳에 어릴 때부터 살지 않은 사람이 처음 들어온다면 나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공간을 기반으로 한 복지정책이 범죄율과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게 최근의 연구경향”이라면서 “우리나라의 사회정책도 계층 위주에서 공간 위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박현준·박영준 기자 hjunpark@segye.com 20120417022426 008/인/이경훈 고려대 교수 “환경를 바꾸면 범죄가 준다” //img.segye.com/content/image/2012/04/17/20120417022426_0.jpg 1 11 09 6 저작자 표시 + 변경금지 N 20120417022522 [심층기획 ‘우리 안의 폭력’] “환경을 바꾸면 범죄율도 준다” 20120417173425 20120417202354 20120417202051 이경훈 고려대 교수(건축학·사진)는 17일 “잘못 설계된 공간과 주택이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면서 “범행기회를 제공하는 환경을 바꾸면 범죄율을 일정부분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공동주택에 비해 범죄에 취약한 단독주택 밀집지는 도시환경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만큼 공공부문이 도로, 조경, 조명 등 가로환경을 개선해서 범죄율을 낮추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그가 범죄취약 지역으로 꼽은 곳은 크게 3가지다. 먼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영역의 위계가 명확하지 않은 공간이다. ‘누구 소유이며, 누가 관리하는 영역인지’를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막다른 골목, 다세대 주택의 하부 주차공간 등도 시선이 미치지 않아 야간에는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각지대’로 꼽았다.공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범죄율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이는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교수는 “실제로 10대들이 주택가에서 스피커를 크게 틀었을 때 공동체 결속이 강한 동네에서는 결속이 약한 동네에 비해 제지를 받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실험결과도 있다”고 말했다.사회인구통계학적 특성을 감안할 때 원룸촌도 범죄의 타깃이 될 확률이 높다. 그는 “이사가 많아 주민 사이의 결속력도 약하고 집이 비어있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많고 방범이 허술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바꿔 말하면 공간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면 범죄율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게 그의 논리다.‘범행기회를 제공하는 환경’을 변화시켜 범죄를 줄이자는 것이 셉테드(CPTED, 범죄예방설계)의 논리다. 그는 “1970년대 오스카 뉴먼이란 학자가 뉴욕의 공공임대 주택단지 두 곳을 비교한 결과, 지역이나 주민특성이 비슷한데도 범죄율에서는 3배 이상 차이가 난 점을 연구하며 주목을 받았다”면서 “현재 미국과 영국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고 말했다.공공부문의 책임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범죄예방설계가 비교적 잘 돼 있는 공동주택과 달리 개별주택은 개인이 범죄예방이 가능하도록 설계하거나 유도하기는 사실상 힘들다”면서 “공공부문이 도로, 보행로, 가로수 등 공공디자인 환경에 적극 나섬으로써 일정부분 범죄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고 조언했다.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20120417021478 '엽기 토막살인' 오원춘, 휴대폰 4대로 뭐했나 20120417142054 20120418092707 20120417142145 수원 여성살인사건 피의자 우위안춘(오원춘·42)이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17일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지석배)에 따르면 우씨가 소유한 휴대전화는 모두 4대로 확인됐다. 이중 우씨 명의로 등록된 휴대전화는 3대였다. 우씨는 중국에서 2G 휴대폰을, 최근 검거 당시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나머지 1대는 불법으로 개통하지는 않았으나 정확한 사용시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우씨가 또 다른 휴대전화 1대에 대해 "건설현장에서 주운 뒤 보관해 왔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검찰 조사 결과 우씨는 본인 소유 휴대폰 가운데 같은 기간 동시 사용한 것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우씨 소유의 휴대전화 4대와 숨진 20대 여성의 휴대전화를 포함해 모두 5대의 모바일 분석을 대검에 의뢰, 분석 결과 일부가 이미 도착한 상태로 알려졌다. 검찰은 모바일 분석 결과를 토대로 우씨와 자주 통화한 지인과 우씨의 과거 행적 등을 조사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현재 대검에 의뢰한 112신고센터 음성파일 분석 결과를 받았다. 또 15일부터 대검 심리분석가 8명을 투입해 우씨가 진술한 내용의 신빙성 여부를 분석하고 있다. 이 분석 결과는 이르면 이번 주말께 나올 예정이다. 뉴스팀 new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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