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려 170분에 달하는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왠지 모를 가슴 뭉클한 기분을 느꼈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명작소설 ‘돈키호테’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고 있던 터였고, 공연 역시 밝고 활기찬 분위기에서 진행돼 ‘내 기분이 대체 왜 이럴까’ 궁금했다.
원인은 모든 공연이 끝난 뒤 커튼콜 타임에 밝혀졌다. 주인공인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연기한 배우 황정민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객석을 향해 인사를 건넨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것은 ‘황정민의 진심’이었다. 이 배우는 진짜 가슴에서 우러나온 연기를 했구나. 그제야 보는 내내 가슴이 울렁거렸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한 이후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아온 황정민. 그가 2009년 뮤지컬 ‘웨딩싱어’ 이후 3년 만에 무대로 돌아와 순수와 열정, 그리고 진심어린 연기로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지난 2005년 ‘돈키호테’란 제목으로 초연된 이래 올해로 벌써 5번째 찾아온 ‘맨오브라만차’는 황정민과 함께 서범석, 홍광호 등 새로운 3명의 돈키호테들을 내세워 전작들과 차별화된 무대와 음악 등을 선보이고 있다.
미국 브로드웨이의 극작가 데일 와써맨에 의해 재구성된 ‘맨오브라만차’는 종교재판으로 감옥에 갇힌 세르반테스가 동료 수감자들 앞에서 ‘돈키호테’의 모험담을 펼쳐 보이며 자신을 변론하는 내용의 ‘극중극’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 본 연극 ‘돈키호테’를 통해 꿈과 이상을 알게 됐다는 황정민, 배우가 된 이후 내내 ‘라만차의 기사’를 꿈꿨다는 서범석, 그리고 한국 뮤지컬계의 블루칩 홍광호 등 세 배우들은 각자 다른 개성으로 젊은 작가(세르반테스)와 70대 노인(돈키호테)을 오가며 캐릭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돈키호테의 충직한 하인 산초 역에는 배우 이훈진이 2007, 2008, 2010년 전작들에 이어 또 다시 캐스팅됐다. 이훈진은 뮤지컬배우다운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은 물론, 다양하고 풍부한 표정연기로 여성관객들의 ‘귀염둥이’로 자리잡았다. 또한 뮤지컬계의 유망주로 떠오른 배우 이창용이 산초 역에 더블캐스팅돼 부드러운 목소리와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돈키호테로 인해 삶의 희망을 알아가는 여주인공 알돈자 역에는 초연과 2010년 공연에 참여했던 배우 이혜경과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유명한 조정은이 함께 캐스팅돼 남자배우들 사이에서 강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때로는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다 해도, 자신의 꿈과 이상을 향해 앞으로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다. 이상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기에. 꿈꾸는 삶, 그게 바로 진짜 삶이란 메시지는 40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슴에 ‘콕’하고 와 박힌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주옥같은 넘버 ‘임파서블 드림(The Impossible Dream)’이 전하는 감동은 여전하다.
지난 22일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화려한 막을 올린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오는 10월7일까지 관객들과 만난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오디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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