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국민작가’ 리앙(李昻·60·사진)의 장편소설 ‘미로의 정원’(은행나무)이 동국대 중문과 김양수 교수의 번역으로 국내에 출간됐다. 격동의 대만 현대사를 배경 삼아 어느 퇴락한 명문가 여성의 성장기를 감각적 문체로 그렸다.
1950∼80년대 대만의 암울한 정치 현실과 그런 와중에도 청춘남녀가 나누는 격정적이고 관능적인 사랑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주인공 주잉훙(朱影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나 ‘토지’의 최서희를 연상케 하는 매력적인 여성이다. 그의 집안은 한때 대만 최고 명문가였으나 주잉훙의 부친이 장제스 총통의 군사독재에 반대하다가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대대로 집안의 자랑이었던 아름다운 정원 ‘함원’도 폐허로 방치되고 만다.
빼어난 미모와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춘 주잉훙은 건설업체 로비스트로 활동하던 중 대만 최대의 부동산 재벌 린시겅(林西庚)과 만난다. 린시겅은 애초 한 여자와의 진득한 사랑 따위엔 관심이 없는 ‘바람둥이’였으나 주잉훙은 그의 치명적 매력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 밀고 당기는 아슬아슬한 연애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 함원은 주잉훙이 유년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된 뒤에도 인생의 고비를 맞을 때마다 찾는 어머니 품속 같은 공간이다. 스칼렛 오하라와 타라, 최서희와 평사리의 관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다.
주잉훙은 늘 함원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길 열망하고, 재력가인 린시겅과 혼인함으로써 그 꿈을 이룬다. 명문가의 퇴락과 재기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본 함원은 식민통치·군부독재·경제성장을 차례로 겪으며 완전히 변모한 대만 사회의 축소판이라 하겠다.
1980년대에 쓰여진 여성 소설가의 작품치고는 성애 묘사가 제법 과감하다. 특히 여성의 성적 욕구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형상화했다. 여자가 느끼는 성적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지, 남자와 어떻게 다른지 등을 몰라 애태우는 남성 독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픈 책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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