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펑크 쇼’ 시초로 꼽아 인디 음악은 세 가지 키워드와 함께 국내 음악계에 뿌리를 내렸다. ‘펑크록’과 ‘크라잉넛’, 그리고 ‘드럭’이다. 이를 한 줄로 풀면 “크라잉넛과 같은 펑크록 밴드들이 1994년 서울 신촌 홍익대 인근 클럽 ‘드럭’에서 활동하면서 탄생했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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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독립 음반인 크라잉넛과 옐로 키친의 ‘아워 네이션’과 명반으로 꼽히는 코코어의 ‘슈퍼스타’, 더더의 ‘The The Band’(왼쪽부터). |
그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강아지 문화예술’ ‘인디’ ‘라디오’ ‘디플라워’ 등 인디 레이블이 설립됐고, ‘홍대앞=인디 음악’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자유로운 정신과 다채로운 음악을 정체성으로 내세우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시장이 발전하면서 크라잉넛·허클베리핀 등 묵직한 사운드 그룹뿐만 아니라 델리스파이스·언니네 이발관·미선이·어어부밴드 등 다양한 장르의 밴드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밴드는 많았지만 팬층이 늘지 않으면서 90년대 후반부터 시장 초기에 형성된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일부 인디 레이블이 간판을 내렸고 클럽도 문을 닫았다. 이런 난관에 물꼬를 튼 건 2000년대 초반 도입된 ‘홈 레코딩’(고가의 장비 없이 개인작업실에서 녹음·편곡하는 것) 시스템이었다.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가 ‘문라이즈 레이블’을 만들면서 인디 음악인 사이에 홈 레코딩 시스템이 널리 퍼졌다.
이후 창작자가 ‘1인 레이블’을 세우고 음악을 생산하면서 인디 음악계는 새로운 장을 맞았다. 음악평론가들은 홈 레코딩 도입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 1·2기로 나누기도 한다. 상업 자본과 유통망으로부터 독립된, 진정한 인디(Independent)음악을 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형성된 것이다. 수작으로 평가되는 코코어의 ‘슈퍼스타’(3집, 2003), 푸른새벽의 ‘푸른새벽’(1집), 더더의 ‘The The Band’(4집, 2004) 등이 모두 홈 레코딩으로 탄생했다.
거대 자본의 논리에 따라 트렌드를 따라가는 아이돌 가수와 달리 모던 록·펑크·레게·컨추리·월드뮤직 등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며 인디 음악계에도 ‘장기하와 얼굴들’ ‘십센치’ ‘국카스텐’ ‘브로콜리너마저’ ‘갤럭시 익스프레스’ 등과 같은 무서운 신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방송에서도 이들과의 접점을 시도하는 프로그램이 전보다 늘었다.
그러나 좁은 시장에서 생계 문제로 음악을 그만두는 현실과 인기를 좇는 ‘인디 상업주의’의 등장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음악 관계자들은 “독립 음악을 하면서도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인디 음악계에 놓인 과제”라고 지적한다.
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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