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29)씨의 페이스 북은 ‘개점휴업’ 상태다. 이씨는 친한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하며 즐거움을 느꼈지만 갈수록 얼굴만 알고 있다시피 한 사람들이 친구 요청을 하더니 얼마 전에는 직장 상사마저 그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잘 모르는 사람이나 직장 상사에게는 사생활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데 친구 요청이 와서 난감했다”며 “요청을 다 수락한 뒤에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SNS 피로감’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사생활이 원치 않게 공개되는 것을 꺼려 SNS를 그만두려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SNS와 게임이 연동하면서 무차별적인 ‘메시지 공해’까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쟁과 과시’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특징이 피로감을 더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19일 ‘대학 내일 20대 연구소’가 대학생 8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SNS 사용을 그만두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16%가 ‘자주 해 봤다’고 응답했다. ‘한두 번 정도 생각해봤다’는 사람도 52%에 달했다. 그만두려고 한 이유에 대해서는 31%가 ‘사생활 노출’을 꼽았다.
특히 한국에서는 ‘남이 하는 것은 나도 한다’는 특유의 경쟁 의식이 피로감을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승원 덕성여대 교수(심리학)는 “한 번 시작하면 적어도 남과 비슷한 수준으로 게임을 하고 친구 숫자를 늘리고 싶은 마음에 SNS에 열중하게 된다”며 “SNS상에서 큰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도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2000만건 이상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해 ‘국민게임’에 등극한 ‘애니팡’은 밤낮없는 메시지 발송의 주범이 됐다. ‘카카오톡’과 연계된 게임 특성상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한 메시지가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직장인 박모(32)씨는 지난주에야 인터넷을 통해 메시지 차단 방법을 확인하고 실행에 옮겼다. 인터넷에는 박씨처럼 메시지 차단법을 묻는 글이 속출하고 있다.
그는 “친구 목록에 있는 줄도 몰랐던 사람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다”며 “밤에 알림 소리에 잠이 깰 정도로 괴로움을 당했는데 지금이라도 차단법을 알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스스로 조절해가며 사용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박창호 숭실대 교수(정보사회학)는 “앞으로는 관계가 무한히 확장되는 특성을 지닌 SNS를 벗어나 살 수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며 “자신만의 사생활 공개 기준을 만들고, 원치 않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