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있으면 어린이날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다문화가정 어린이는 이 땅에서 꿈을 이루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다문화가정과 그 자녀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저는 출판인으로서 ‘한 권의 책이 어린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다문화가정에 책을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될 수 있는 일이어서 여간 즐겁지 않습니다.” 그림동화책 전문출판사 여원미디어 김동휘(58) 대표는 2010년부터 다문화가정에 무료로 동화책을 보급하는 일을 4년째 해오고 있다. 그가 보급해온 책은 다문화가정의 엄마와 아빠가 모국어로 아이와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한 책이란 뜻으로 ‘다모책’으로 불린다.
‘단군신화’ ‘훈민정음’ ‘김치’ ‘추석’ ‘생일’ 등 우리의 고유문화를 알기 쉽게 소개한 동화책과 ‘콩쥐 팥쥐’ ‘호랑이와 곶감’ 등 널리 알려진 전래동화까지 10종으로 베트남어·영어·태국어·몽골어·인도네시아어·러시아어 등 6개 국어로 번역했다.
최근 집계해 본 결과, 20만여권을 전국의 시·군청과 사회복지모금회·도서관·교회 등을 통해 2만여 다문화가정에 보냈다. 도서 제작 비용에만 3억원이 들었는데 책값까지 따지면 10억원이 넘는다. 출판계 역시 불황이라 다들 ‘한 푼이 아쉽다’고 하는 요즘 그의 용기는 도드라져 보인다.
1일부터 어린이날인 5일까지 진행되는 ‘파주출판도시 어린이 책잔치’ 집행위원장으로 바쁜 그를 30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출판사에서 만났다. 형형색색의 그림책으로 가득 찬 키 높은 백색 책장으로 둘러싸인 사무공간에서 인상 좋은 학자풍의 그가 반갑게 맞았다. 그에게 이같이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묻자 불쑥 고향 얘기를 꺼냈다.
김동휘 여원미디어 대표는 “다문화가정 모국어 책 지원 사업은 출판인으로서 다문화가정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 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에서 시작했다”며 “우리 시회가 급속하게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만큼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그들을 위한 정책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정호 기자 |
직업 덕분에 자연스럽게 떠올린 것이 동화책이었다. “이주 외국인 엄마와 아빠는 우리 말과 글이 서툴러 책이 있어도 제대로 읽어 주지 못하는 게 현실인데, 이들이 아이에게 읽어줄 수 있는 원어로 된 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판단해 이 사업을 시작했지요.”
아동도서 수출과 해외 도서전에 참가하느라 해외 출장이 잦다는 그는 “독일에는 일자리를 찾아온 터키인이 100만명 이상 거주하지만 이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잘돼 신분보장도 받고 취업도 할 수 있어 대체로 만족하고 있는 편”이라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왔는데도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편견과 차별로 가득 차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앞으로 10∼20년 후에는 이들 다문화가정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녀가 우리가 떠나온 고향의 지킴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고향을 아끼는 마음에서라도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는 동화책을 기증하면서도 다문화가정을 직접 방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경기도 내 시·군 다문화가정에 책을 보낼 때는 경기도와 ‘다문화가정 자녀 동화책 지원사업 협약’을 맺어 책을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하면 다문화가정지원센터 등에서 가정을 방문해 지원하는 방식이다. 많은 이들이 선행을 베풀 때는 사람을 불러모아 전달식을 하고 사진을 찍는 등 요란한 행사(?)를 벌이지만 그는 지원만 할 뿐 더 이상의 ‘얼굴 내밀기’는 성격상 맞지 않는다고 사양한다.
다문화가정에 관심이 많은 만큼 이들을 위한 정책 아이디어도 많이 생각한다.
“다문화가정이 많은 지역의 대학생들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대학생들이 순수하면서도 열정이 있잖아요. 사회복지학 전공이나 다문화가정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이 해당 지역의 다문화가정을 돕고 수시로 방문해 지원하는 방식이죠. 이들이 다문화가정을 접하면서 보고 느낀 점 등을 논문으로 작성케 해 좋은 내용은 정책에 반영케 해야 해요.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급격히 변화하는 만큼 다문화가정의 구성원들이 문화적으로 동질감을 갖고 사회에 빨리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가 다문화가정 지원 외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분야는 놀이와 교육이 결합하는 어린이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2006년부터 경기 파주에 어린이 전용 문화공간인 ‘탄탄스토리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방문한 어린이들은 무료로 공연·그림감상·북카페·곤충 전시 등에 참여할 수 있다. 소문이 나면서 지난해에만 12만명이 다녀갔다.
그의 꿈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보다 큰 규모의 ‘키즈파크’를 만드는 것이다. 상업적인 ‘키즈파크’는 많지만 교육·문화·자연환경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가 있는 공간은 드물다는 생각에서다. 가족과의 산책하며 농사체험, 동물 기르기, 작가와의 대화, 가족 캠핑 등이 총망라한 공간을 추구한다. 콘텐츠를 제대로 갖추려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서두리지 않고 차근히 준비하고 있다.
그는 사업가이면서도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수많은 거래와 비즈니스가 있지만 ‘접대’ 등을 통한 성사보다는 일과 콘텐츠로만 승부해 왔다는 게 주변인의 전언이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2003년 이탈리아 볼로냐를 시작으로 방콕·런던·대만·프랑크푸르트·도쿄·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수많은 해외 도시 도서전에 그림책을 들고 발품을 팔아 현재는 2000여점 출간해 4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2009년에는 ‘미술관에서 만난 수학’(글 마중물·그림 김윤주’)으로 아동도서 출판계의 노벨상으로 여겨지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했다.
아동도서전문가인 만큼 부모들을 위한 아이들 독서 지도법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책을 공부라는 생각으로 강제적으로 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놀잇감으로 생각하고 재미를 떠올리게 해야 합니다. 책에 흥미를 갖게 하려면 아이의 ‘신체연령’이 아니라 ‘독서연령’을 파악하는 게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10살이라도 평소 책을 읽지 않은 경우라면 5∼6살짜리가 보는 책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책은 재밌고 쉽다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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