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부총리는 이날 새누리당 최고위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와 의원총회에서 세법개정 수정안을 보고했다. 세법개정에 따른 세금 부담 기준선을 애초 연소득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린다는 게 골자다. 연소득 5500만원까지는 추가 세금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정했다는 얘기다. 연소득 5500만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중산층 기준선(중위소득의 150% 이하)이다. ‘중산층 증세’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준점인 셈이다.
이처럼 기준선이 조정되면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납세자는 기존 434만명에서 205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 총급여 3000만∼4000만원 구간에 159만명, 4000만∼5000만원 구간에 112만명, 5000만∼6000만원 구간에 79만명의 납세자가 분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연소득 6000만원과 7000만원 구간의 추가 세금 부담도 나란히 16만원이었으나 각각 2만원과 3만원으로 대폭 축소된다. 이는 중산층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더 이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4%가 연소득 7000만원은 돼야 충산층이라고 답한 바 있다. 정부는 2008년 세법개정 때 중산층 기준을 과세표준액 8800만원으로 잡은 적이 있고, 올해 4·1 부동산대책 때는 연소득 6000만원까지를 중산층으로 분류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가운데)과 관계자들이 13일 서울 중구 대우재단빌딩에서 ‘2013년 세법개정안’ 백지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이번 수정안으로 중산층의 반발이라는 급한 불은 우선 끌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정부가 수정안을 내놓자 급조한 땜질식 처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수개월에 걸쳐 마련한 ‘작품’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손질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중산층의 부담을 줄이겠다고 내놓은 해법은 간단하다. 근로소득세액 공제 한도를 높여 세금 부담 증가분을 상쇄하는 것이다. 연소득 5500만원까지는 세액공제 한도를 16만원 늘려 기존 세 부담 증가분(16만원)을 모두 덜게 하고, 7000만원까지는 한도를 13만원 높여 기존 부담(16만원) 중 13만원을 대체하는 식이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증세 없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무리인데도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기보다 당장 급한 소나기만 피하려 한 것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국민 설득과 공감대 형성이라는 정공법 대신 중산층 세금 부담 완화라는 다소 손쉬운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얘기다. 더구나 수정안에 따른 세수 감소분 4400억원을 메우는 묘안을 짜내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일단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에 추가 부담을 안기지 않고 탈세 등에 대한 감시와 단속을 강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보완책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세청이 지난해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들이 탈루한 세금 적발액은 3700억원이다. 올해 강력한 세무조사 등을 통해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사용처가 정해져 있다. 여기에 4400억원을 추가 징수하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지난주 정부가 세법개정안 발표 때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탈세 제보 포상금 지급 한도를 1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올린다는 게 전부였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강화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세종=우상규 기자, 이귀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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