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0여가구가 사는 이 임대아파트 단지는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성폭행 사건에 대해 수군거리는 광경이 목격됐다.
이곳에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 등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입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지만 서로 의지하며 사는 아파트 단지로 알려졌다. 제주시가 지역 내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이웃과 함께하기 운동’ 평가에서 최우수 아파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적장애인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 단지가 12일 오가는 사람이 없어 썰렁한 모습이다. |
입주민 최모씨는 “그동안 소문도 없었다. 어디 동네 부끄러워 살겠냐. 우리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실이 알려지는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관리사무소 측은 손사래를 치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이번 사건은 한 피해 여성이 교회에서 성폭행당한 사실을 털어놓은 뒤 경찰이 첩보를 입수해 수사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지적장애 여성들이라는 점과 한동네에 사는 이웃에 의한 범죄라는 점, 피해자가 7명이나 되고 범죄사실이 장기간 경찰이나 관계기관에 알려지지 않았으며, 피해가 길게는 수년간 지속했다는 점 등에서 영화 ‘도가니’를 연상케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도덕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적장애 여성들을 보호 대상이 아닌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는 노리개쯤으로 여긴 것이 사건의 본질이다. 한마디로 장애 여성의 인권은 무시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이 주민 6명을 성범죄로 내몬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적장애 여성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제주도 내 36개 기관·단체가 모여 구성한 장애인성폭력피해지원 비상대책위원회는 지적장애 여성이 성폭력 등 범죄로부터 지속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마련을 촉구했다.
고현수 제주인권단체연석회의 공동대표는 “이번 사건은 지역사회에서 중증 여성 장애인에 대한 인권유린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라며 “여성 장애인에 대한 성윤리와 인권의식이 사회적으로 부재함을 인식하고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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