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데닛 지음/유자화 옮김/옥당/3만원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로 근·현대 철학을 선도한 데카르트. 그의 이원론은 현대 철학계에서도 금과옥조로 여긴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라는 두 가지 실체로 되어 있으며, 비물질적 실체인 정신은 뇌에 있는 송과선을 통해 물질적 실체인 육체와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이원론이다. 데카르트는 이것이 뇌의 중추라고 파악, 이해와 의식 과정 즉, 정신활동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니얼 데닛(60) 보스턴 터프츠대 교수는 신간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에서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해체하고 비판론을 전개한다. 데닛 교수는 이 책으로 현대 철학계의 거목으로 떠올랐다. 데닛은 인간 뇌의 정신 작용을 컴퓨터 작동과 유사한 원리로 파악하는 인지과학 이론의 거물이다.
데닛은 우선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데카르트 극장’ 모형이라고 부른다. 정신 작용은 세상 모든 것이 비치는 화면 또는 무대와 같다 해서 그렇게 지칭했다. 일종의 비꼬는 표현이다. 데닛은 “이원론은 여러 문제도 있지만 매우 그럴듯해 보여 유물주의 과학자들조차도 그 마력에 빠지고 만다”고 지적한다.
데닛은 데카르트 등이 규명한 의식 작용이 복잡하고 경이로운 현상임은 틀림없지만, 결코 신비할 것도 없다고 비판한다. 마치 마술을 속속들이 알고 나면 그것이 더 이상 마술이 아닌 것처럼, 뇌의 신경화학적 작용을 알고 나면 정신작용도 결코 신비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데카르트는 뇌 속에서 정신과 육체가 만나 의식 작용이 이뤄진다고 파악하지만, 데닛은 좀더 기계적인 메커니즘으로 파악하자고 한다. 데카르트의 이론이 미시적이라면, 데닛은 좀더 거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 대니얼 데닛은 인간 뇌의 의식작용을 컴퓨터 작용 같은 기계적인 메커니즘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
데닛은 의식 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언어학,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총동원한다. 그는 데카르트 극장 모형 같은 것은 없다면서 뇌의 작용을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가상 기계에 비유한다. 현대 철학자들 사이에서 아직도 가장 큰 논쟁거리는, 의식 작용이 뇌의 기계적인 화학적 작용인지, 아니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작용인지의 여부다. 데닛의 이론은 정신작용을 단지 기계적이고 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 이해하려고 했다는 한계를 보인다. 하지만, 데닛은 수많은 과학적 성과를 진지하게 고려함으로써, 현대 철학계의 논쟁거리를 흥미롭고 의미 있는 담론으로 이끌었다. 데닛은 여름만 되면 미국 메인 주에 있는 농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직접 땅을 파고 열매를 따면서,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철학자로서 생각의 밭을 일군다는 평을 듣는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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