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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부근 교동도서 황해도로 잠입 공작 활동 아버지가 무용담 들려줘”

입력 : 2014-06-25 06:00:00 수정 : 2014-06-25 07: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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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안 화교참전동지회승계회장 “국립서울현충원에 추모비가 건립되면 먼저 가신 화교(華僑) 참전용사들의 혼령을 위로할 것 같습니다.”

김육안(金育安·중국명 진위안) 여한(旅韓·재한)화교참전동지회승계회장(한성화교협회 감사장)은 24일 추모비 건립에 대한 강한 희망을 나타냈다.

화교참전동지회승계회는 국내 화교 참전용사들이 거의 사망해 참전동지회의 실질적 활동이 중단되자 그 뜻을 이어받기 위해 만들어진 유족 조직이다.

1926년 중국 산둥(山東)성 르자오(日照) 출신인 김 회장의 부친 김성정(金聖亭·진성팅·2001년 사망)씨는 6·25전쟁에 참전해 육군 4863부대 SC지대원으로 활약한 공로로 197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보국포장을 받았다.

김 회장의 당숙인 김정의(金亭義·진팅이)씨는 6·25전쟁 당시 SC지대원으로 적 후방에 공수낙하됐다가 실종돼 돌아오지 못했다.

김 회장은 “부친이 6·25전쟁 중 야음을 틈타 강화도 부근 교동도에서 황해도로 잠입해 공작활동을 하다가 총격전 와중에 다리를 부상한 무용담을 들려주시곤 했다”며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교동도에 꼭 한 번 가고 싶어 하셨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아버지가 1973년 보국포장을 받을 때는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서 ‘박정희 대통령은 참전용사가 노후 생활을 걱정하지 않도록 나라에서 보상하겠다고 말씀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실제로는 ‘외국인이어서 안 된다’, ‘국방부에 기록이 없어 안 된다’는 말만 들었다”며 “부친이 1998년 한국에 귀화했어도 특수임무 수행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다”고 한숨지었다.

그래도 한국 사회에 대한 고마움은 여전하다고 했다. 그는 “1950년대 말 아버지가 의정부에서 중화요리식당인 지동관(志東館)을 차리자 한국 분들은 아버지를 ‘김 상사’라고 불렀다”면서 “그분들이 ‘우리도 참전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데 외국인인 김 상사가 참전해줘 고맙다’면서 우리 식당을 찾아주셔서 정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국립서울현충원 내에 따로 안장됐던 화교참전 용사 강혜림(姜惠霖), 위서방(魏緖舫)의 묘를 한곳에 모아준 국립서울현충원의 배려에 감사한다”고도 했다.

두 사람의 묘가 한 장소에 안장된 때가 2012년 5월 15일. 화교단체는 이날을 기려 해마다 5월15일 추모행사를 갖고 있다. 화교에게 현충일은 5월15일인 셈이다.

김 회장에게는 부친의 유업이 남아 있다. 화교 참전용사의 피와 땀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우는 것이다.

그는 “국립서울현충원의 강혜림, 위서방 두 분 묘비 옆에 참전용사의 이름을 새기고 무명용사를 기리는 작은 추모비나 위령비를 하나 세우는 것이 꿈”이라며 “세월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화교 참전의 역사가 추모비를 통해 전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의정부=글 김청중, 사진 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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