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주 지음/불광출판사/2만3000원 |
석굴암 본존불은 자체로 불교 미술의 극치로 꼽히지만, 동해의 일출과 어우러지며 아름다움이 종교적 신성성의 경지로까지 이어진다. 정동향으로 배치된 본존불 이마의 보석에 일출 때의 빛이 비쳐 “석가여래가 대각(大覺) 성도(成道)한 영광된 모습을 적극적으로 재현한다”는 이야기다. 석굴암하면 한번쯤 들어봤음 직한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며, 그것도 일제 식민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떨까. 게다가 석굴암을 훼손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면…. 석굴암미학연구소장인 저자가 ‘햇살신화’라고 이름붙인 주장을 따라가보자.
햇살신화가 사실이라면 신라인에게는 동해의 아침 햇빛을 석굴암 본존불에 비추려는 생각이 있었어야 한다. 하지만 해보다는 달에 친근함을 보였던 신라인의 사상과 정서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향가 14수 중 해와 관련된 것은 없으나 달을 노래한 것이 5수나 된다는 점, 석굴암이 자리한 토함산의 다른 이름이 ‘월함산(月含山)’이라는 점, 김대성의 석굴암 창건 설화에 해와 관련된 내용이 일절 없다는 점 등이 근거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본존불과 일출을 연결지어 생각하거나 글감으로 사용한 사례도 없다.
햇살신화는 일본인들의 ‘태양숭배’ 사상에서 유래했다. 그들은 석굴암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를 ‘동해’가 아닌 ‘일본해’로 인식했고, 그곳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태양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연상했다. 본존불과 햇살의 연결은 그런 감격에 젖어 만들어진 상상일 뿐이었다. 햇살신화를 무비판적으로 계승한 한국 학자들은 전각을 설치한 1960년대 공사가 개방구조였던 석굴암의 원형을 훼손한 것으로 비난하며 전각을 없애자고 주장한다. 전각은 본존불과 햇살을 분리해 햇살신화의 재연을 봉쇄하는 것도 그들에겐 불만이다. 하지만 석굴암에는 원래 전각이 있었고, 전각이 없다면 눈과 비, 짐승들의 침입으로부터 본존불을 지킬 수 없다.
저자가 보기에 석굴암 주실의 돔 지부에 창이 있었다는 ‘광창설’, 법당 밑으로 샘물이 흘러 실내의 결로를 방지했다는 ‘샘물 위 축조설’ 등도 석굴암을 둘러싼 신비주의의 부산물이다. 이런 윤색을 걷어낼 때라야 석굴암의 모습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게 결론이다. 재야사학자의 ‘파격적 주장’이라고만 하기에는 책의 공력이 만만찮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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