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문화의 거리 지킬 수 없나 인사동은 일제강점기 말부터 골동품가게가 밀집되면서 귀중한 전통의 물건이 교류되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그 이후 화랑이나 지업사가 즐비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업화된 기념품가게가 줄을 잇고, 국적 불문의 상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중국 등 외국 관광객이 인사동 관광을 선호하면서 국적 불문의 물건은 더욱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신하순 서울대 교수·화가 |
그러나 최근 들어 운영난으로 종이를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지업사가 문을 닫는가 하면 살아남은 곳도 축소돼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특히 미술품을 진열·전시하고 판매하는 장소인 갤러리는 예술적 향기를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공간이지만 사라지거나 옮기는 것을 반복하면서 문화의 향기를 점점 잃어가는 듯하다. 젊은 미술가에게 인기 있던 몇몇 화랑은 아예 업종을 바꾸거나 인사동을 떠나 다른 곳에 문을 열기도 했다. 그 이유는 옷가게나 찻집이 갤러리보다 경제적으로 이익이 많이 나고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턱없이 높이기 때문이다.
고도성장과 미디어의 발달은 문화의 향수에 대한 소통을 가볍게 여기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수많은 다양한 정보를 휴대용 미디어를 통해 손바닥 안에서 쉽게 볼 수 있어서이다. 그 결과 군소 갤러리는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요즘엔 인사동과 이웃한 사간동과 북촌 등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사동의 대안공간들이 문화의 향수를 일으키는 데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는 왜 우리의 옛것을 계승·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불과 몇 년 전에 전시회를 갖고 지인으로부터 격려를 받던 장소가 이제는 추억의 장소로 전락하고, 하루가 다르게 옷가게나 기념품점으로 간판을 바꿔 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 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문화적 마인드가 경제적 시련에 자리를 내주고 있으니 말이다. 인사동에서는 점점 한국적인 문화의 향수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몇몇 화랑만이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인사동의 문화적 향기가 문화의 중심에서 멀어져가고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로에는 1950년대의 모습을 고스라니 간직한 학림다방이 있다. ‘학림’은 1960∼70년대 대학가 문화공간의 상징이었으며 지금도 많은 문인과 다양한 문화계 인사가 예술적 경험과 인생 철학을 논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즈음 우리는 과거 살롱문화가 발달해 사회의 문화 밑거름으로 성장하고, 문화적 정서를 공유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끔은 하늘을 바라보고, 숲을 마음에 담으면서 나도 자연의 일부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런데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을 되새겨 보려는 문화적 감성은 옛 선비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논어’ 술이편에 보면 공자는 “도(道)에 뜻을 두고, 덕(德)에 의거하고, 인(仁)에 의지하고, 예(藝)에 노닐거라” 했다. 즉 선비들은 산수를 그려 대청마루에서 감상을 하며 산수에 취하곤 했다. 그러면 바쁜 현대인들이 문화를 향수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것은 가까운 도심의 문화공간을 찾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마음에서 갤러리나 화랑가 등 문화공간을 찾는 것이 어떨까 싶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화는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화 향수마저 경제 제일주의의 수단으로 전락돼서는 안된다.
신하순 서울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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