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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정부·재계 네 탓만…경제회복 골든타임 째깍째깍

입력 : 2014-08-11 19:26:02 수정 : 2014-08-11 2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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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염불 된 '비즈니스 플렌들리'
허울뿐인 무역흑자 행진···기업 투자냐 규제 완화냐
“기업이 투자해야 한다.(정부)” vs “규제완화가 먼저다.(재계)”

지난달 29일 열린 민관 합동 제조혁신위원회 발족식에서 정부 대표인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재계 대표인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말이다. 현재 정부와 재계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지금 어디를 가더라도 정부나 재계 측 사람을 만나면 비슷한 말을 앵무새처럼 되뇐다. 역대 정부마다 출범 당시에는 ‘비즈니스 플렌들리’를 외쳤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정부와 재계 간 갈등의 골은 여전하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갈등의 강도가 더욱 세지는 형국이다. 한국을 둘러싼 외부 여건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정부와 재계의 대타협 없이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필두로 한 2기 경제팀에게 주어진 1∼2년의 ‘골든타임’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비관론이 팽배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 걸핏하면 충돌하는 정부·재계


‘잃어버린 10년,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한국경제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이다. 우리 경제가 30개월 연속 무역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허울’뿐이다. ‘불황형흑자’가 부메랑이 됐다.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높아지면서 원화가치 상승을 초래해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과거 10년을 보면 2010년을 제외하고 한국의 성장률이 세계 성장률을 앞지른 적이 없다.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린 한국이 더 이상 날아오르지 못하는 ‘이무기’로 전락했다는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의 한탄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처한 위기상황은 심상치 않다. 극심한 내수부진 속에 힘을 합쳐도 모자랄 정부와 재계가 ‘경제살리기’라는 원론적인 목표에는 공감하면서도 각론에서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과거 개발시대부터 이어져온 정부는 기업을, 기업은 정부를 믿지 못하는 전통적인 민관 관계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탓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정부부처 수장들은 기업인들을 불러 ‘투자·고용 확대’를 요청한다. 경제에 온기가 돌고 소비가 늘어나기 위해서라는 논리도 역대 정부와 똑같다. 모양은 간담회 형태지만 실상은 요구나 다름없다. 하지만 기업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싸늘하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과거처럼 정부의 ‘말발’이 통하지 않는 데다 기업들도 ‘할 말은 한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정부의 ‘냉온탕식‘ 정책 자체도 기업들의 불신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민관 합동 발족식에서 박용만 회장이 “노동·환경 규제가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늘어나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다”고 호소한 대목을 눈여볼 필요가 있다. 재계는 정부가 먼저 기업하기 좋은 환경부터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부가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중과세’ ‘전례없는 일’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부가 기존 유보금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하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 대한 경제계 불만도 폭발 직전이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악수라며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지금도 지나가고 있다.

지난 7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과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김영배 한국경총 회장 직무대행,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재문기자 moon@segye.com
◆지금이 위기 … IMF ‘대타협’ 생각해야


경제주체들의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사정위원회가 제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사정위는 IMF 구제금융이라는 초유의 국난을 겪던 1998년 1월 출범했다. 다음해 민주노총이 합의에 반발해 노사정위에서 빠지는 등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김대중정부 시절 노사정위는 정리해고법 도입, 파견법 제정, 교원노조(전교조) 합법화, 복수노조 허용 등 굵직굵직한 합의를 이루고 제도화를 이끌어 냈다. 이는 IMF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문제는 일각에서 ‘식물위원회’라고 폄하하는 노사정위의 정상화다. 노사정위는 IMF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각종 이슈에 대해 노사정위는 팔짱만 끼고 있다. 다행히도 지난달 29일 노사정이 7개월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노사정 대표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해 12월 한국노총이 경찰의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공권력 투입에 반발하며 노사정위를 떠난 지 7개월 만이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눈앞의 이익에 집착해 ‘우물 안 개구리’로 시간을 흘려보내면 우리 경제는 ‘솥 안의 개구리’가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 대목도 되새겨봐야 한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는 “1998년 IMF 국난을 슬기롭게 넘어간 이후 여전히 노사정 모두 위기의식을 못느끼고 있다”면서 “노사정위원회라는 ‘창구’가 있는 만큼 참석주체 모두가 전폭적인 재량권을 갖고 대타협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경제주체들이 아직 벼랑끝에 내몰렸다는 절박함이 없고, 그러다보니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식으로 먼저 나서는 사람도 없다”면서 “네덜란드식이나 독일식 대타협을 교범으로 삼아야하지만 지금 상황은 ‘끝까지 가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동 기자 kid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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