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25m 망원경 건설 중 오늘 4월21일은 과학의 날이다. 그리고 지난 4월16일에 마침 한국천문학회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천문학 50년 역사를 돌이켜보고자 한다.
수천년 된 고인돌에 새겨져 있는 별자리들이 증명해 주듯이 우리 민족은 태곳적부터 우주를 관찰해왔다. 이런 전통이 있었기에 국사에 기록된 독립된 국립 천문기관들만 해도 첨성대, 서운관, 관상감 순서로 이어져 내려왔다.
하지만 찬란한 민족 천문학의 전통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철저하게 말살된다. 국립 천문기관도 자취를 감추면서 우리나라는 천문학을 잃어버렸다. 이런 황량한 모습은 광복 후에도 무려 20년이나 이어진다. 한마디로 나라가 ‘먹고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1965년 한국천문학회가 창립됐다. 한국천문학회는 1965년 3월21일 춘분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실에서 20여명의 회원이 모여 창립됐다. 참으로 초라한 출발이었으나 역사적 사건이었다. 현재 1000명이 넘는 회원을 가진 학회의 모습과 비교하면 정말 격세지감을 떨칠 수 없다.
한국천문학회는 국립천문대 건립을 정부에 계속 건의했고 그 결과 1974년 9월13일에 이르러 국립천문대가 탄생했다. 국립천문대는 소백산에 61cm 광학망원경을 갖춘 최초의 현대적 관측소를 세워 다시 민족 천문학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
당시 그곳에 근무했던 직원들은 겨울에는 영하 30도의 추위를 이겨내고 눈을 녹여 밥을 지어 먹으며 고난의 나날을 보냈다. 덕분에 61cm 광학망원경은 이후 20여 년 동안 국내 최대 망원경으로서 위상을 지켜가며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게 됐다. 오늘날 이 정도 크기의 광학망원경은 시민천문대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국립천문대가 처음으로 발간한 책력은 1976년에 나왔다. 즉 197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나라는 ‘나라다운 나라’가 된 것이다. 조선시대 동지 사신이 중국에서 받아오던 책력을 국가 천문기관이 최초로 발행하게 된 것이다. 1985년 대덕전파천문대에 14m 전파망원경이 세워지면서 우리나라에 전파천문학의 역사도 시작됐다.
나는 1992년 말 천문대에 들어왔다. 들어와 며칠 뒤 받은 신분증 내 사진 밑에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라고 인쇄돼 있었다. 여기저기 문의한 결과 내 직장 명칭이 정확하게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천문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때 우리는 다른 연구소의 부설기관도 아니고 부서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도대체 표준하고 천문대하고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긴 우주론에 표준 모델도 있긴 한데….’ 첨성대 → 서운관 → 관상감 → 국립천문대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천문대, 이게 말이 되는가? 직장 동료들은 뭐 그런 걸 가지고 놀라느냐 무심히 되물었다. 그전에는 전자통신연구소 부설기관이었단다. 세계적으로 전자나 표준 계통 연구소에 소속된 역사를 가진 천문대는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소위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기능 재정립 및 운영 효율화 방안’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내용 중에 ‘작은 연구소는 무조건 합친다’ 같은 발상에서 비롯된 조항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어느 나라 천문대가 남아나랴. 내가 아는 한 500명이 넘는 천문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데…. 연구소도 ‘대마불사’란 말인가.
그리하여 우리나라 역사를 통해 천문대가 없는 시절이 일제강점기 이후 다시 찾아오게 됐던 것이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무모한 후진국에서는 이런 코미디 같은 일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런 와중에도 1996년 보현산천문대를 세웠고 마침내 1999년 한국천문연구원 간판을 달게 됐다. 보현산천문대는 만원짜리 지폐 뒷면에 소개된 지름 1.8m 광학망원경을 소장하고 있다. 크기만 비교하면 1.8m 광학망원경은 아마 세계 100등 내외일 것이다. 국력에 비해 이렇게 초라한 망원경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천문학의 찬란한 전통을 생각하면 정말 조상을 뵐 낯이 없었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
우리 천문학자들을 믿고 지원해준 당시 정부와 청와대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남긴다. 예산이 확정되던 그날의 감격을 우리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한 나라의 천문대도 없애던 옛날에 비하면 정말 우리 공직자들도 많이 발전했다.
이 GMT는 현재 칠레 안데스 산맥에 건설되고 있으며 2020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벌써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은 세계 어디를 가도 대접이 달라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청소년들이 천문학자가 되면 GMT를 이용해 지구와 똑같은 행성을 찾는 일, 우리 해보다 수백억배 무거운 블랙홀을 찾는 일, 수수께끼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규명하는 일,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히는 일 등 인류역사에 기여하는 대과업을 즐기게 될 것이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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