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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속에 묻혀있던 고물, TV 만나 ‘보물’이 되다

입력 : 2015-05-20 21:33:44 수정 : 2015-05-20 21: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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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쇼 진품명품’ 1000회 진기록 2006년 KBS TV쇼 진품명품 제작진에 의뢰된 한 점의 고물품. 한 개인사업가가 건설현장에서 만난 파지 줍는 노인의 리어카에서 발견해 파지와 맞바꾼 오래된 서첩이었다. 감정 결과는 놀라웠다. 1810년 조선시대 강진에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이 아내가 보내온 치마 조각을 잘라 만든 것으로 아들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적은 ‘하피첩’이었다. 그간 기록으로만 전해질 뿐 실물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감정가는 1억원에 불과했지만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TV쇼 진품명품 방송 사상 최고의 이슈와 화제를 낳았다.

국내 유일의 고미술 감정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이 24일 방송 1000회를 맞는다. 주 1회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20년간 이어져 1000번째 방송하는 것은 한국 방송 역사에도 드문 일이다.

1995년 시작한 KBS 고미술 감정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이 24일 1000회 특집을 방송한다.
KBS 제공
조상 대대로 전해진 유물을 고물로만 보던 시절, 고미술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꿔 놓은 것이 TV쇼 진품명품이었다. TV쇼 진품명품은 1995년 3월5일 처음 전파를 탔다. 당시 KBS2 채널의 오후 5시 교양프로그램으로 출발했다가 지금은 KBS1 채널 일요일 오전 10시55분에 자리를 잡았다. 20년이 흘렀지만 최근에도 시청률 6∼7%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고미술과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는 애청자들이 있다는 얘기다.

TV쇼 진품명품 이낙선 책임프로듀서는 “주변 골동품을 다시 보게 됐다는 시청자와 역사를 좋아하게 됐다는 어린이까지 다양한 시청소감을 접하고 있다”며 “지나간 역사가 아닌 살아 있는 역사를 소개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알아주는 시청자들이 있어 늘 감사하다”고 1000회 녹화 소감을 전했다.

TV쇼 진품명품은 스튜디오 감정과 출장감정 두 가지로 구성된다. 회화, 도자기, 고서, 민속품 등 분야의 전문가들이 스튜디오에서 3종류의 의뢰품을 감정하고 매주 지방을 방문해 골동품을 직접 찾아간다. 이렇게 1000회 동안 소개된 작품만 스튜디오 4000여점, 출장감정 5000여점으로 모두 9000여점이다.

역대 최고 감정가를 받은 유물은 2011년 7월24일 방송된 ‘석천한유도’다. 1748년 화원 김희겸이 조선시대 무신 석천 전일상을 주제로 그린 풍속화로 15억원이 매겨졌다. 풍속화로는 드물게 실존인물을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두 번째는 2004년 6월27일 방송에서 감정가 12억원을 받은 ‘청자 상감 모란문 장구’다. 상감기법의 전성기에 제작된 청자 장구로 가치가 높다.

제작진은 “감정가가 곧 유물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TV쇼 진품명품을 통해 방송되는 모든 작품은 유물로서 가치가 충분하며 감정가를 매기는 것은 프로그램 구성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TV쇼 진품명품을 통해 문화재급 유물도 다수 빛을 봤다. 하피첩은 2010년 보물 제1683-2호로 지정됐다. 또 ‘현종가례진하계병’(413회), 1969년 삼륜자동차(611회), 우리나라 최초의 수술장면을 담은 최초의 유리원판 필름(533회) 등 다수 작품이 문화재로 지정됐다.

안중근 의사가 1910년 사형 집행 전 중국 뤼순 감옥에서 쓴 유묵 ‘경천’도 2009년 12월20일 이 프로그램에서 공개됐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는 뜻이 담긴 글로 큰 감동을 줬다. 감정위원이 “감히 감정가를 매길 수 없다”며 감정가 0원을 줬다는 소문도 전해지지만 실제 방송에서 6억원에 감정가가 매겨졌다.

TV쇼 진품명품이 20년 동안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방송 초기 한국고고학회가 “문화재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폐지를 주장했고, 1997년과 1999년 감정위원으로 몇 차례 출연했던 사람들이 고미술 관련 사기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신뢰성 논란도 일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진행자 교체 문제로 내홍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1000회까지 방송이 이어진 데 대해 제작진은 “‘문화재는 돈’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비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TV쇼 진품명품이 없었다면 그 많은 문화재들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우리 주변의 옛 물건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의뢰되는 작품의 수와 종류는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이 TV쇼 진품명품의 문을 두드린다.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회화분야 감정위원을 맡은 진동만씨는 “유물을 엿바꿔 먹던 시절에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이제 일반인들도 고미술의 가치를 알아보게 됐다”며 “아직 드러나지 않은 조상들의 작품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사명감을 갖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감정을 계속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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