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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안일·뒷북 대응… 무능한 복지부동이 더 무섭다

입력 : 2015-06-08 18:41:40 수정 : 2015-06-09 01: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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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확진 환자 사우디 이어 세계 2위
초기 전파력 낮다며 상황 축소 급급
추가 확진자 매번 감시 범위 벗어나
기관 방역시스템도 17일 만에 가동
보건전문가 부재 속 병원 공개 실기
잠복기 끝나는 12일 최대 고비 전망
4차감염자 발생땐 최악 국면 가능
지난달 20일 첫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발병한 이후 19일 만에 대한민국이 세계 2위의 메르스 발병국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보건당국은 초기 대응에 실패한 뒤에도 안이한 인식을 보이며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바이러스 확산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국무위원석에 혼자 앉자 메르스 확산 및 대책 관련 긴급현안질문이 시작되기 전 생각에 잠겨 있다. 문 장관은 이날 답변에서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한 여야 의원의 거센 추궁에 거듭 사과했다.
남정탁 기자
◆2·3차 감염 차단 못한 보건당국


최초 감염자가 발생한 지난달 20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설명 자료를 내면서 “추가 감염자가 없고 일반 국민에게 전파 가능성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첫 환자를 간병했던 부인(2번 환자)과 같은 병실의 입원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보건당국은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은 작다”고 말을 바꾸며 상황을 축소하느라 급급했다.

촘촘해야 할 방역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3번 환자(76·사망)를 간호했던 딸이 지난달 21일 자신의 시설격리와 유전자 검사를 요구했지만 보건당국은 이를 무시했다. 의심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그는 5일 뒤 4번째 환자(46)로 확진 판정을 받고서야 격리조치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메르스는 중동과 연관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민에게도 “중동 방문 후 의심증상이 나타나면 적극 신고해 달라”는 말만 되뇌었다.

보건당국이 메르스 발생 초기부터 “3차 감염 우려는 없다”며 전파 가능성을 작게 본 것도 큰 실책이다. 첫 대응에서는 2차 감염자의 범위를 너무 좁게 잡는 바람에 매번 추가 확진자는 당국의 감시 범위 밖에서 나왔다. 결국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 지난달 28일에야 보건당국은 메르스 사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국의 감시에서 누락됐던 환자들이 대거 발견됐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수많은 3차 감염자를 양산한 뒤였다.

◆범정부차원 메르스 대응 시스템 부재


익명을 요구한 감염병 전문가는 “정부가 한 발만 앞장서서 초기 대응을 적극적으로 했더라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 매뉴얼대로 총리실이나 대통령실이 빨리 개입해 범정부적 대응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언론은 복지부가 아닌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보건당국은 ‘질병관리본부장→복지부 차관→복지부 장관’ 순으로 책임자만 격상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 사이 메르스 의심증상을 보이던 10번 환자가 중국으로 출국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복지부는 그제야 부랴부랴 법무부와 출입국 관련 정보를 공유하겠다며 부처 간 협력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의 방역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의료기관이 메르스 접촉자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은 첫 환자 발생 17일 만인 지난 6일 밤에야 가동됐다. 건강보험공단의 ‘의료기관 정보마당’을 통해 대상자 조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환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하면 메르스 접촉 여부와 격리유형(시설격리·자가격리·격리해제·능동감시 등), 노출의료기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애초 복지부는 지난 3일 이 시스템을 가동하겠다고 밝혔으나 3일 이상 늦어진 것이다. 이 사이 여러 병원에서는 메르스 의심환자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해 많은 의료진과 환자들이 접촉자로 분류되는 일이 벌어졌다. 소극적인 방역 정책 속에 8일 현재 누적환자 87명에 격리대상이 2500명을 넘어섰다.

◆보건 전문가 없는 보건복지부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보건복지부에 보건 관련 전문가가 없었다는 점도 꼽힌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경제학자 출신으로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 관련 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뽐냈으나 이번 사태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장관을 보좌해야 할 장옥주 복지부 차관도 법학·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행정관료로 보건 이슈에 취약했다. 보건 전문가의 부재 속에 메르스만 확산됐다.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관련 병원을 공개하라는 여론이 높았지만 정부는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며 거부했다. 평택성모병원 관계자는 통화에서 “2차 감염자 발생 직후 우리 병원이 자체적으로 발생 사실과 병원 이름을 모두 공개하려고 했지만 보건당국이 만류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병원명과 지역을 공개하기 전날까지도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 이름 공개는 실익이 없다”며 비공개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다 지난 7일에야 그동안의 원칙을 뒤집고 관련 병원과 지역을 공개했다.

◆메르스 사태, 12일이 최대 고비

‘슈퍼 감염자’인 14번, 35번 환자가 바이러스를 옮긴 사람들의 잠복기는 오는 12일쯤 끝날 것으로 보건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에서만 34명의 감염 환자를 발생시킨 14번 환자는 지난달 27∼29일 사흘간 이 병원 응급실에 머물렀다. 이때 메르스에 감염된 사람은 최대 잠복기인 2주 사이에 증상이 나타나는데 12일이 2주째가 되는 날이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확산이 멈춘다면 평택성모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을 중심으로 확산됐던 메르스 사태는 진정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현재 이 환자와 관련해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됐거나 격리대상으로 분류된 사람만 1000여명에 달한다. 정부의 희망과 달리 접촉자 관리 실패로 4차 감염자가 추가로 발생하면 메르스 사태는 ‘지역사회 감염’이라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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