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 활동에 신경 쓰다 보니 입법 성적이 좋을 리가 없다. 국회 모니터링 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의 법안 가결률 조사에 따르면 지난 6월21일을 기준으로 여야 비례대표 의원 52명 가운데 18명은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례대표 의원들이 대표 발의해 통과시킨 법안 가결률은 4.7%로 지역구 의원들의 6.5%보다 낮았고, 19대 국회 전체 발의법안의 평균 가결률(6.1%)에도 못 미쳤다. 법안 가결 실적이 없는 18명 중 12명은 지역사무소를 개소했거나 당협 위원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비례대표 의원이 39명에 달했다. 이들은 대부분 현역 의원의 프리미엄을 업고 여야 텃밭 지역이나 승산이 높은 수도권에서 뛰고 있다. 비례대표 취지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 여성·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자는 것이지만 사실상 계파별 안배로 공천이 이뤄진다는 지적이 많다. 19대 총선에서는 친박근혜계, 친노무현계 인사들이 이름을 많이 올렸다. 전문 영역에서 뚜렷한 입법 성과를 내는 이가 드물고 임기 절반 정도 지나면 너도나도 지역구 찾기에 나서다 보니 비례대표제 폐지론까지 나온다. 새정치연합 조경태 의원은 지난달 말 기자회견을 열어 “입법의회의 전문성을 살리자는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사라지고 돈으로 국회의원을 사는 제도라는 비판과 함께 계파정치, 줄 세우기 정치의 온상으로 전락했다”고 폐지를 주장했다.
정치권에선 선거구 획정 논의와 관련해 비례대표 수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놓고 입씨름이 한창이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어제 “새누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를 수용한다면 우리 당도 (새누리당이 요구한)오픈프라이머리를 당론으로 정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반대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은 어려워 보인다. 국회의원 정수가 300명으로 유지된다면 선거구 재획정으로 인한 지역구 증가로 비례대표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차제에 비례대표제의 실효성부터 따져보고 지역구행 징검다리로 악용되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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