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십자각 복원’ 지지부진… 당초 2009년서 20년 늦춰져 경복궁의 동·서십자각 복원은 애초 2009년까지 마무리하기로 했었다. 광화문 복원 등 경복궁 담장을 되살리는 사업의 하나였다. 그러나 실행되지 않았고 흥복전, 소주방 등과 함께 2016년까지 끝내는 것으로 미뤄졌다. 이마저도 다시 수정돼 현재 동·서십자각의 복원은 2026∼2030년으로 예정된 ‘궁중군사권역 복원’ 사업의 하나로 들어 있다. 원래의 계획보다 20년 이상 연기된 것이다. 동·서십자각의 사례는 일제강점기에 망가진 궁궐의 핵심 시설조차 계획만 세워 둔 채 실행은 하지 못하는 복원 사업의 지지부진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문화재청이 이달부터 2018년까지 3년 안에 완료하겠다고 밝힌 흥복전 권역 복원 작업 역시 예산 문제로 약속한 기간 내에 마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동·서십자각 복원, 가능할까
동·서십자각이 경복궁에서 가지는 위상은 ‘궁궐’이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궁’(宮)은 왕과 왕족이 살던 집을 말하고, ‘궐’(闕)은 궁의 좌우에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한 망루와 같은 건물을 이른다. 경복궁에서 궐에 해당하는 것이 동·서십자각이다. 동십자각이 지금처럼 경복궁과 떨어져 도로 한복판에 섬처럼 고립되고, 서십자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조선총독부 건립, 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 개최를 위한 전차선로의 연장 등이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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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은 원래 궁궐 담장과 연결돼 광화문과 함께 경복궁을 경비하는 군사시설로 활용됐다. |
1990년대 만들어진 ‘경복궁복원정비기본계획’(1차 계획)은 서십자각을 원래 위치에 복원하고, 동십자각은 담장과 연결시키도록 했다. 광화문 복원을 중심으로 한 2003∼2009년의 1차 5단계 사업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예산 부족, 관련부처와의 협의를 둘러싼 행정상의 문제” 때문에 미뤄졌다. 2008년 마련된 ‘경복궁복원기본계획‘(2차 계획)에서는 2011년부터 시작되는 1단계의 주요 내용으로 올렸다. 2009년 즈음 진행된 ‘광화문 광장 조성 사업’, ‘국가상징거리 조성사업’ 등과 연계해 “1단계 사업으로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2차 계획에서 ‘복원의 시급성’을 못박은 것은 동·서십자각이 유일했다. 그러나 계획은 2011년 수정돼 2026∼2030년의 6단계로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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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훼손돼 경복궁 담장에서 분리된 동십자각 주위로 시민과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있다. |
동·서십자각의 복원은 원래의 위치와 그 주변에 들어선 도로, 건물 때문에 도시계획 변경, 막대한 보상 재원 마련 등이 필요해 일찌감치 어려움이 예상됐다. 2차 계획에서 서십자각을 원래 위치인 효자동 도로에서 약간 벗어난 지금의 국립고궁박물관 자리로 이동하고, 동십자각은 담장과 연결하면서 도로 변경을 최소화하자는 안이 제시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런 제안은 원래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복원의 진정성에 배치되는 문제가 생겼다. 서울시립대 이강근 교수는 “원래 위치에 복원하는 게 맞다”며 “(자리를 옮겨가면서까지) 급하게 할 필요가 있나, 억지로 하는 것만큼 어색한 게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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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십자각이 있던 자리는 도로로 바뀌었고, 주변에는 각종 건물들이 들어차 있다. |
복원을 20년 이상 연기해 두기만 했지 이를 어떻게 해결해 갈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문화재청은 동·서십자각 복원이 연기된 것에 대해 “광화문을 복원하던 2008년 즈음 서울시와 협의했으나 잘 안 돼 2030년까지로 계획을 바꾼 것”이라며 “그때 이후로 서울시 등 관련기관과의 협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복원을 위해 해당 도로가 막힐 경우 일대에 교통적으로 미칠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세종대로를 넓히고 광화문광장 공사를 할 때도 많은 반발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과의 협의에 대해서는 “2005년 이후로 없었다”고 전했다. 한 건축전문가는 “기존의 도로를 바꿔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면 항상 보수적으로 판단해 안 된다고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적어도 동십자각은 관련기관들이 복원 원칙에만 합의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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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십자각 표지석만이 철거되기 전의 자취를 증언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일단 질러놓은 흥복전 복원
문화재청은 지난달 16일 19세기 말 외국공사, 대신들의 접견 장소로 사용되다 1907년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을 중건한다며 일제가 철거한 흥복전의 복원 작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날 복원에 쓰일 목재를 기증받았고, 본격적인 작업은 이번달부터 시작됐다. 문화재청의 계획은 2018년까지 3년간 모두 208억원을 투입해 복원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계획은 초반부터 삐걱대고 있다. 복원 예산을 제대로 확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의 계획대로라면 흥복전 복원예산은 산술적으로 한 해 7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최근 40억원 정도만 배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경복궁 복원 예산은 소주방 복원 때부터 많을 때는 50억원, 적을 때는 43억원이 배정됐다. 한 해 평균 47억원 정도다. 같은 경복궁 복원 사업 중 하나인 흥복전 복원에도 이만큼의 예산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소주방, 흥복전 등 궁중생활권역을 내년까지 복원한다는 계획에 따라 실현되기가 힘든 계획을 보도자료까지 뿌려가며 공언한 것이다. 의도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될 공산이 커진 셈이다.
글·사진=강구열·김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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