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이를 토대로 부·권력 더 공고히 해
맷 타이비 지음/이순희 옮김/열린책들/2만2000원 |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근대 헌법의 기본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평등의 저울이 기울어져 있다는 지적은 더 이상 새로운 게 아니다. 사법제도가 강자에게 유리하고 약자에게 불리해졌다는 얘기다. 미국 맷 타이비 기자가 쓴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는 미 사법제도의 맹점을 분석한 책이다. 우리 실정과도 많은 부분에서 흡사하다는 점에서 공감가는 내용이 적지 않다.
저자는 촌철살인의 표현으로 유명하다. 그는 몇년 전 쓴 책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관련해 감옥에 간 월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지적해 유명해졌다. 세계 최대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를 ‘인류에게 들러붙은 흡혈 오징어’라고 규탄했고,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우주 최고의 악질’이라고 묘사했다. 저자는 강자에게는 솜방망이를, 약자에게는 철퇴를 내리는 미국의 사법부와 이를 토대로 부와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부자들의 실태를 파헤친다.
맷 타이비 기자는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에서 미국 사법제도의 맹점을 지적하면서 금융계의 조직적인 범죄행위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자세히 소개한다. 사진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사태로 미국 대형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지자 뉴욕 월가 리먼브라더스 본사 앞에서 한 시위자가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저자는 특히 ‘부수적 결과’란 다소 생소한 말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부수적 결과’란 미 법무부가 대형 금융회사 임원들에 대해 형사처분을 포기할 때 쓰는 말이다. 은행들이 형사 제재에 걸려 타격을 입으면 연쇄파산과 대량실업 등의 부수적 결과가 초래되니 기소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법률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는 핑계로 특혜를 주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이로써 부와 권력을 향해 기울어진 저울은 점점 더 기울어지고 정의로부터 멀어진다. 불의를 용인하고 키우는 악순환이 지금 미국에서 자행되고 있다고 저자는 개탄한다.
2008년 10월 리처드 풀드 당시 리먼브라더스 최고경영자가 법정에서 리먼사태 관련 증언을 마치고 나오면서 시위대에 둘러싸여 비난받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거대 규모의 기업, 은행, 금융사들은 이런 ‘대마불사’를 믿고 더욱 날뛴다. 부수적 결과는 클린턴정부 시절 법무장관을 지낸 에릭 홀더가 입안한 것이다. 그는 지금도 비난받는 정부 관료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장관직에서 물러나 대형 로펌에서 큰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지금 미국에서 행해지는 불의와 불법에는 돈의 논리가 작용한다. 돈의 논리는 법무부 소속 법률가들을 결박한다.
이 책에는 대기업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부대’가 거액의 성공보수를 받으며 소모전 전략을 쓰는 과정을 생생하게 드러난다. 돈의 논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미 사법부는 법률적 방어능력이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기소를 다그친다. 검사와 경찰들은 이에 부화뇌동한다. 복지급여를 받는 사람들, 저소득층 지역 주민들과 유색인들을 향해 올가미를 조여 업무실적을 올리는 행태가 그것이다.
저자는 “성공과 부만을 중시하고 실패와 가난을 멸시하면서 체계적으로 사람들을 승자와 패자로 양분하는 사회, 승자는 부를 움켜쥐고 법망을 빠져나가고, 패자는 가난뱅이가 되어 감옥에 갇히는 사회가 지금 미국”이라고 지적한다.
번역자 이순희는 후기에서 “리먼브라더스 같은 은행 강도적 행태는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면서 “미국의 것이라면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도 벌써부터 이런 양분화의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니 그 답답함에 가슴이 조여든다”고 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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