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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대가에게 듣는 2016 한국경제] "경제위기 본질은 '가계빈혈'… 소득 늘려야 저성장 벗어나"

입력 : 2016-01-04 20:07:28 수정 : 2016-01-04 22: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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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인터뷰 - ③ 박승 / 시장원리보다 공익 중시… 부동산 부양 반대 소신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의 좌우명은 선심후물(先心後物)이다. 물질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념적으로는 중도다. 시장경제부문에서는 확고한 시장주의자라는 점에서 보수적이지만 공공부문에서는 시장원리보다 공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라는 자평이다. 부동산 중심의 경기부양책을 반대하는 것도 이런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총재는 부동산 중심 사회에 머물러 있는 한 어떤 경제성장에도 삶의 질 선진화는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전 총재는 부동산값 상승이 국민생활 빈곤화의 근본 원인이라는 생각에 이 제도의 도입을 대통령에게 누차 말씀드렸다고 한다. 노태우정부 시절 건설부장관으로 주택 200만가구 신도시 건설계획을 세우고 추진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은 독립성과 같은 원칙과 가치를 지키는 일에는 대쪽같은 성품이다. 한은 총재 시절 정부에서 금융통화위원들에게 금리인상 반대를 주문했다는 소리에 당시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고함치며 항의한 일화는 유명하다.

“위기는 올해부터 시작될 겁니다.” 박승(80) 전 한국은행 총재의 새해 경제전망은 어두웠다. ‘2017년 위기설’에 대해 “내년까지 갈 것도 없다”고 말했다. 올해 가계부채 문제와 부동산경기 불황으로 위기국면이 시작될 것이란 얘기였다. 한국경제는 저성장 터널에 들어섰는데 미국은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으니 거품이 꺼지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박 전 총재는 “우리가 조금 늦게 올릴 수는 있더라도 결국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속도는 완만해 당장의 충격은 적겠지만 2∼3년 뒤 금리가 3∼4%까지 올라가 있을 거란 점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빚 내서 집 사라”로 요약되는 정부 경기부양책이 미국 금리인상을 계기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셈인데, 박 전 총재는 “그래서 부동산 부양책을 반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중심 내수부양책에 대해 “당장 써먹긴 좋지만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정책”이라고 평했다. 이를 포함해 박근혜정부 성장정책을 ‘산업화시대부터 쓰던 고장난 엔진’에 비유했다. 성장 환경은 바뀌었는데 구닥다리 엔진을 쓰니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는 거였다.

박 전 총재는 위기 탈출구로 ‘성장정책의 대전환’을 역설했다. 투자와 수출, 제조업이 성장을 이끌어갈 힘을 잃었으니 경제성장 정책을 기업투자 주도에서 가계소비 주도로, 수출 주도에서 내수 주도로, 제조업 주도에서 서비스업 주도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과 복지의 관계도 ‘선성장 후복지’에서 ‘양자 병행’ 체제로 바꿔야 하며 기업소득보다도 가계소득을 더 보호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총재가 ‘가계 보호’를 특히 강조하는 것은 작금 한국경제 위기의 본질을 ‘가계 빈혈’로 진단하기 때문이다. 박 전 총재는 “저성장이 문제가 아니라 성장을 해도 가계소득은 늘지 않고 가계부채는 누적되고 전·월세는 크게 올라 서민들이 먹고살기가 너무 어려워졌다는 것, 이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진행된 세계일보와의 세밑 인터뷰에서 새해 한국경제를 전망하고 있다. 박 전 총재는 올해 경제위기가 시작될 것이라며 성장정책 대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장기저성장시대의 새 활로가 될 것”이라며 남북경제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박 전 총재는 “북엔 7000조원어치 지하자원과 저가의 풍부한 노동력, 방대한 투자시장이 있다”면서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 지하자원, 노동력, 투자시장과 결합한다면 한국경제 위기 극복의 좋은 탈출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한국경제는 지난해보다 어려워진다는 것인가.

“새해 성장환경은 더 어려울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금리인상과 중국 성장둔화, 원자재 가격 하락의 충격이 계속될 것이고, 대내적으로는 양극화 진행으로 가계소득이 줄고 가계부채 압박이 커질 것이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깊어지고 투자와 수출 침체가 계속될 것이다.”

―이명박·박근혜정부 경기 부양책이 효과가 없었던 건가.

“전혀 나아진 게 없다. 성장률은 계속 떨어졌고 양극화 문제도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성장 환경은 바뀌었는데 산업화시대부터 쓰던 엔진을 그냥 쓰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책도 결국 대기업 장사하기 좋게 뭘 해줘라, 이런 건데 전부 과거식이다. 엔진은 망가져 이미 못쓰게 되어 있는데 그걸로 계속 달리려고 하는 거다. 수출에 올인한다고 해서 과거처럼 수출이 10∼20% 늘 수 있나. 환상이다. 엔진을 바꿔야 한다. 수출 엔진을 내수 엔진으로, 기업투자 엔진을 가계소비 엔진으로…. 그런데 그런 말하면 요즘은 좌파라고 하지 않나. 그러니 참….”

―미국 금리인상이 시작됐다. 올해 이 흐름이 본격화하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미국 금리인상이 우리에게는 별 문제가 안 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미국이 1994년 2월부터 1년 동안 금리를 연3.5%에서 6.0%까지 올렸는데 이때 멕시코가 국가부도사태를 맞고 이게 브라질, 러시아, 태국을 거쳐 한국 외환위기로 나타났다. 2004년 6월부터는 2년간에 걸쳐서 1%금리를 5.25%까지 올렸는데 미국 채권가격 폭락,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금리를 빠르게 올리진 않을 텐데.

“올리더라도 매우 점진적으로 올릴 것이다. 또 유럽, 일본은 통화 완화정책을 지속하고 있어 충격이 과거보다는 작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앞으로 2년간 현재 0%대 금리를 3∼4%까지 올릴 것이다. 그러면 신흥국은 외화자금 유출로 주가와 집값 하락, 경기침체 같은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신용상태가 좋지 않은 나라는 국가부도 사태를 걱정해야 할 만큼 심한 충격을 받을 것이고 사정이 훨씬 낫다고 하지만 한국도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

―지금 한국경제의 위상은 선진국 문턱 아닌가.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에 근접해 있다. 소득수준으로 보면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그러나 복지수준이나 국민행복지수, 국민정신건강상태, 출산율 등 다른 지표들을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 꼴찌다.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은 1위 아닌가. 한국경제는 소득수준과 삶의 질 간의 괴리가 매우 큰 두 얼굴의 모습을 하고 있다. ”

―한국경제는 저성장 늪에 빠져 있다. 이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

“저성장에 기인하는 거라고 볼 수 없다. 성장지표를 보면 성장률 3% 안팎, 근원소비자물가 2% 안팎, 경상수지 흑자 900억달러 안팎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양호하다. 경기침체의 본질은 민생 문제다. 경제는 성장해도 가계소득은 늘지 않는다. 성장이 아니라 분배의 문제다.”

―성장 과실이 왜 가계로 흘러가지 않는가.

“두 가지다. 하나는 경제성장은 대기업이 주도하는데 대기업 소득이 국내에서는 투자되지 않고 해외투자나 사내유보로 쌓이고 있다. 다른 하나는 국내투자를 한다 하더라도 고용은 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에서 가계의 역할도 달라져야 하는 것인가.

“달라져야 한다. 과거 가계는 소비를 절약하고 저축을 증대해서 내자(국내자본)를 기업에 공급하는 소극적 역할에 그쳤다. 앞으로는 가계가 소비증가로 경제성장을 이끄는 적극적 역할로 변신해야 한다. 과거엔 기업소득을 늘려 가계소득을 늘리는 이른바 낙수효과, 이거 하나로 성장을 이끌었지만 앞으로는 가계소득을 늘려 기업소득을 늘리는 분수경제 효과에 의한 성장을 지향해야 한다. 낙수·분수 쌍끌이로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가계소득을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나.

“과거에는 기업 투자가 왕성하고 고용 효과가 커서 성장과실을 가계로 환류시키는 역할을 시장이 했다. 그래서 정부가 나설 필요 없었던 것인데 지금은 소득 순환경로가 막혀 있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것이 소득재분배 정책이다.”

―그러려면 증세를 해야 할 텐데.

“증세는 꼭 해야만 한다. 우리는 조세부담률이 18%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이런 담세율로는 앞으로 경제성장도, 복지도, 재정건전성도 모두 이룩할 수 없다. 증세는 모든 국민이 부담하되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더 부담해야 한다. 예컨대 법인세는 실효세율이 15%로 30%대인 일본의 절반도 안 된다. 자금이 없어 투자를 못했던 과거엔 정부가 법인세를 인하해 줬지만 지금은 자금을 쌓아 놓고도 안 하는 상황이므로 법인세 인상이 투자를 줄이거나 성장률을 낮출 우려는 거의 없다.”

대담=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1954년 이리공고 졸업

●1961년 서울대 상대 졸업, 한국은행 조사역

●1974년 뉴욕대 경제학박사

●1984년 중앙대 정경대학장

●1988년 청와대 경제수석

●1988∼1989년 건설부장관

●2002∼2006년 한국은행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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