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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가슴 아픈 일제 '수탈의 기록'

입력 : 2016-02-28 20:39:27 수정 : 2016-06-24 17: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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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감시카드…유물·유적 유리건판…
식민지 현실 전하는 사진·영상 공개
‘소화 9년(1934) 5월 촬영’이라고 제작 시점을 밝힌 일제강점기의 영상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바다를 건너온 양들이 함경북도 웅기(지금의 선봉)에서 하역되는 장면이 들어있다.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원료 공급처로 활용하기 위해 펼친 ‘남면북양 정책’을 일단을 보여준다. 독일인 신부가 촬영한 영상에서는 떠들썩한 운동회, 결혼식, 아이들이 춤추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더없이 가난하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삶이 마냥 척박하지는 않았음을 전한다. 두 영상은 한국영상자료원이 러시아, 독일에서 발굴해 다음달 1일 일반에 공개하는 자료다. 20세기 초반 우리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나 다양한 사진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가치가 더욱 새롭다. 자료가 많지 않은데다 문헌이나 그림이 전하지 못하는 사실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인지라 일제의 약탈, 당시 조선인들의 고초 등을 보여주는 사진이 특히 눈길을 끈다. 여러 기관에서 온라인으로 서비스하거나 책으로 발간한 사진 자료들을 보면 당대의 현실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일제 학자들이 한국인의 인종적 근원을 밝히겠다며 촬영한 ‘단천 관남리 부부 체격 측정’ 사진. 한 방향을 보고 남녀를 비교하듯 찍은 것에서 일제의 왜곡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독립운동가 고초 전하는 ‘감시대상 인물카드’ 데이터베이스(DB)

강귀남은 헝크러진 머리에 슬픈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겁을 먹은 듯한 표정이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잡혀와 ‘소화 10년’(1935) 종로경찰서에서 촬영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단단해진 것일까. 1년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당당하다. 전북 옥구 출신의 김일영, ‘김옥출’이라는 가명도 썼다. 듬성듬성 자란 수염에 깡마른 모습이지만 눈빛이 날카로워 여유롭다는 인상마저 풍긴다. 역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잡혀와 수감생활을 했다. 

일제가 ‘문제인물’ 감시를 위해 작성한 강귀남이라는 여성의 ‘감시대상 인물카드’. 초췌한 모습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잡힌 이 여성이 겪었을 고초를 짐작할 수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국사편찬위원회(국편) ‘한국사DB’(db.history.go.kr)에는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6200여장이 올라 있다. 일본 경찰이 독립운동가 등을 ‘문제 인물’로 규정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들었다. 유관순, 한용운, 안창호 등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의 당시 모습도 볼 수 있다.

일제는 3·1 운동으로 한국인들의 민족의식이 고양되자 감시·관리 강화를 위해 카드를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국편은 카드에 수록된 본적·주소·혐의 등을 모두 검색할 수 있게 하고, 카드 원본도 디지털 이미지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창경 궁명정전 처마’를 기록한 유리건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문화재 약탈, 한국사 왜곡의 증거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보관되었던 유리건판 사진 3만8000여장을 소장하고 있다. 대체로 1909년부터 1945년경까지 일제가 영구적인 식민지배를 하겠다며 벌인 고적조사사업 등의 과정에서 우리나라 전역과 만주 등지에 있는 각종 유적, 유물, 민속, 자연환경을 촬영한 것이다.

중앙박물관은 이를 지난해 건축 분야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홈페이지(dryplate.museum.go.kr)에 공개하고 있다. 일본의 학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고적조사사업을 “세계에 자랑해도 부족함이 없다”며 자랑 삼아 떠벌이지만, 사실은 한국 문화재를 파괴, 약탈하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 학자들은 고적조사를 통해 ‘내선일체’를 역사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발견된 유물을 밀반출해 일본으로 가져간 것도 부지기수였다. 고적조사를 이끈 학자 중 한 명인 하마다 고사쿠는 “야마토 민족의 본원(本源)을 알고 인종적 혹은 언어적 전래를 알기 위해 조선의 고대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홈페이지’를 통해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유물·유적, 민속, 자연환경 등의 사진을 서비스하고 있다.
◆서양인이 본 서울, ‘월러드 스트레이트 서울사진’


영상, 사진 모두 20세기 초 한국인에게는 낯선 매체였던 터라 서양인들이 만든 것들이 많다. 외부인의 시선은 어느 정도의 왜곡이 있기도 했지만 그들만의 시각으로 당대의 도시 풍경, 역사적 사건, 사람을 렌즈에 담았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최근 출간한 ‘코넬대학교 도서관 소장 윌러드 스트레이트의 서울사진’은 1900년대 통신사 특파원, 외교관으로 한국에 있었던 윌러드 스트레이트가 찍은 사진 174점을 수록했다. 사진 중에는 처음으로 공개되거나 희소한 것들이 많아 사료적 가치가 뛰어나다.

화려한 상여를 앞세우고 수많은 사람들이 말을 타거나 걷고 있는 사진은 헌종의 계비인 명헌태후의 국장 행렬을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동대문 밖에서 경릉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을사늑약 기념사진은 ‘병합기념조선사진첩’(1910)에도 수록되어 있다. 다만 코넬대 도서관 소장본의 사진에는 병합기념조선사진첩의 사진에서는 지워진 일본인 여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숭례문 앞 일본군대의 행렬 사진은 숭례문 문루 근처의 성벽에서 남대문정거장 방면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용산과 의주로 이어지는 전찻길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남지’(南池)도 확인할 수 있다. 남지는 일본 왕자의 방한 때 매립되어 사라졌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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