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경매장에 18세기 조선시대 청화백자가 나왔다. 낙찰가는 무려 418만4000달러(약 60억원). 당시로서는 해외 경매에서 팔린 최고가의 한국 도자기였다. ‘최고가’라는 점에 주목한 우리 언론의 보도로 큰 화제가 됐다. 한국 유물에 대한 해외의 관심, 인식이 높아진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럴까. 지난달 25일 영국의 한 경매회사가 19세기 목가구 한 점을 출품했다. 추정가는 약 300파운드(약 50만원)였다. 이 회사는 같은 날 6점의 한국 유물을 내놨는데 40파운드(약 6만6000원)로 추정가를 매긴 것도 있었다.
외국인들은 어떤 한국 유물을 얼마나 거래하고 있을까. 한국 유물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일까.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흐름을 가늠할 자료가 세계일보에 처음 공개됐다. 가장 많이 거래되는 유물은 도자기, 거래 건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거래량이 늘고 선호도가 높아지고는 있으나 중국, 일본의 유물에 비해 여전히 인식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유물의 해외 유통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013년부터 하고 있는 ‘국외 경매시장 모니터링’의 지난해 결과 분석이다.
외국인들은 어떤 한국 유물을 얼마나 거래하고 있을까. 한국 유물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일까.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흐름을 가늠할 자료가 세계일보에 처음 공개됐다. 가장 많이 거래되는 유물은 도자기, 거래 건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거래량이 늘고 선호도가 높아지고는 있으나 중국, 일본의 유물에 비해 여전히 인식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유물의 해외 유통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013년부터 하고 있는 ‘국외 경매시장 모니터링’의 지난해 결과 분석이다.
◆미·중·일 중심의 고미술품 거래, 가장 많은 유물은 도자기
재단이 지난해 모니터링한 해외 경매사는 19개국 330곳. 크리스티나 소더비 등 유명 경매사는 물론이고 알려지지 않은 작은 규모의 회사까지 훑었다. 한국 유물 관련 경매 정보는 모두 2432건이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미국이 1101건으로 45.3%를 차지해 거래량이 가장 많았다. 일본이 637건(26.2%)으로 뒤를 이었고, 의외로 영국(189건·7.8%), 스페인(160건·6.6%)도 적지 않았다. 중국은 148건으로 6.1%였다. 체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라트비아 등에서도 양은 극히 적지만 거래가 이뤄졌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져 ‘고미술품’으로 부를 만한 유물이 거래되는 나라는 역시 미국, 일본, 중국이었다. 재단은 “영국, 스페인에서 출품된 유물은 대다수가 우표, 동전이었다”고 밝혔다.
유물 종류별로는 도자공예품이 가장 많았다. 1003건으로 41.2%의 비율을 보였다. 전해지는 양이 절대적으로 많고, 일제강점기에 고려청자를 비롯한 도자기에 매혹된 일본인들이 한국 유물을 본격적으로 서양에 알린 것이 지금껏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매사가 한국 유물로 소개했으나 사실은 중국, 일본 등의 것인 ‘외국문화재’가 395건(16.2%), 촛대·벼루·가구 같은 일반공예품이 386건(15.9%), 근대회화가 129건(5.3%)이었다.
모니터링 결과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해외문화재’다.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 유물인데 경매사에서 한국 유물로 잘못 소개한 것들이다. 이런 유물들이 종류별 분류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는 사실은 아직은 한국 유물에 대한 해외의 인식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재단 이민선 연구원은 “기괴한 모양의 용틀임 조각을 ‘Korean’으로 분류하거나, 조악한 중국 그림을 한국 것으로 소개한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조선 임금의 옥새가 출품되었다는 정보가 입수돼 확인해 보니 글자가 거꾸로 새겨진 것을 보고 씁쓸했던 적도 있다. 스위스의 한 경매사 직원은 다른 나라의 그림을 한국 것으로 소개한 이유를 묻자 “중국, 일본 그림이 아니면 한국 그림으로 분류한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재단은 이런 유물이 한국 것으로 분류돼 계속 유통될 가능성이 커 향후 참고하기 위해 모니터링 결과에 포함하고 있다.
거꾸로 한국 유물이 중국, 일본 유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한국 유물이 저평가되고 왜곡돼 해외에 알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 연구원은 “출처가 정확하지 않으면 하나의 특이한 케이스로 치부돼 싼값에 거래되다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며 “해외의 한국 유물 전문가를 육성하는 데 좀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스위스 경매사에 출품된 ‘범어사 칠성도’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직원과 외부 전문가가 조사하고 있다. 재단 모니터링을 통해 출품된 사실이 알려지고 범어사가 나서면서 환수할 수 있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
재단은 모니터링 정보를 주 단위로 정리해 국립박물관, 문화재청, 경찰청, 공항 감정관실 등과 정기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각 기관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경매정보를 활용하는데, 유물 환수에도 톡톡히 효과를 본다. 도난당했던 ‘동악당재인대선사진영’을 지난해 7월 환수하는 데 모니터링 정보의 공유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진영이 미국의 한 경매사에 출품된 사실은 포착되었으나 재단은 도난 유물이라는 사실까지는 모른 채 모니터링 정보를 각 기관에 알렸다. 그런데 인천공항 감정관실에서 도난품이라는 사실을 알려왔다. 제작연대(1738년)가 확인된 가장 이른 시기의 진영이라는 문화재적 가치도 커 환수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일단 해당 경매사에 경매중지를 요청하고, 출품자와 협상 끝에 반환할 수 있었다. 재단 강임산 실장은 “도난품이라는 걸 감추기 위한 것이었는지 약간의 덧칠을 해놨고, 제작시기도 19세기로 표시되어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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