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오디션에서 ‘혹시 꿈이…’하고 노래하는데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공연하며 보낸 1년의 시간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아요.” 배우 박혜나(34)가 뮤지컬 ‘위키드’로 돌아온다. 다음달 18일 대구 공연을 시작으로 7월 서울 무대에 선다. 그에게 ‘위키드’는 각별하다. 이 작품을 만나기 전 그는 유명배우가 아니었다. 2013년 그와 함께 ‘위키드’ 오디션을 본 지원자는 1000명이 훌쩍 넘었다. 해외 제작진은 낭중지추처럼 그를 알아봤다. 주역인 초록마녀 ‘엘파바’에 그를 점찍었다. 그해 11월 막이 오르자 가창력·연기력을 겸비한 그에게 관객의 환호가 쏟아졌다.
“배우들이 ‘위키드’ 연습하듯 공부했으면 우리 하버드대 갔겠다고 할 정도였어요. 힘든 만큼 서로 돈독해지더라고요. 이 작품은 2시간50분 동안 암전 한 번 없어요. 대사 하나, 음표 하나에 다 약속된 사항이 있어요. 하나를 안 지키면 조명, 박자, 대사 줄줄이 어긋나요. 공부하고 연습할 게 너무 많아요.” 그럼에도 “‘위키드’를 한 배우들은 이 작품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했다. 훌륭한 작품을 한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그는 “작품 완성도가 좋아서 15∼20㎏씩 되는 옷을 입고 공연해도 행복했다”며 “드라마가 깊이 있으면서도 8세부터 80세 관객까지 아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위키드’는 2003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후 12년째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브로드웨이 누적 입장권 판매 수익이 10억5만달러(약 1조1940억원)를 돌파해 화제다.
‘위키드’의 초록마녀 박혜나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캐릭터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고, 지난 1년간 제가 성숙했다면 그게 묻어나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
“캐릭터가 잘 표현된다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초록은 엘파바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색이고 캐릭터를 완성시켜 줘요. ‘위키드’ 이후 초록이 제일 좋아하는 색이 됐어요.”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수차례 ‘감사’를 언급하며 ‘나’보다 ‘우리’를 앞세웠다. 씩씩하고 솔직하면서 겸손해했다. 이번에 엘파바가 안 됐으면 무안했겠다고 묻자 “떨어지면 할 수 없죠. 오디션에 많이 붙어본 적이 없어요”라고 답하는 모습도 그랬다.
“‘위키드’ 전까지 취미생활이 오디션 보기였어요. 1년에 10번 보면 10번 떨어졌던 것 같아요. 떨어지면 내가 적합하지 않은가 보다 생각한 지 오래됐어요. 선택되면 감사한 거죠. 물론 말은 이래도 번뇌에 싸여 살아요. 그래도 요즘은 예전과 달리 안달복달하는 게 없어요. 내게 작품이 왔으니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잘하자 해요. 이 일 말고 더 잘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먹고 자고 사람 만나는 게 다 일에 맞춰져 있어요.”
그는 작은 무대에서 시작해 스타로 발돋움했다. 뮤지컬계에서 흔치 않은 사례다. 그를 보며 누군가는 희망을 키울지도 모른다.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제가 무슨 주제라고 말하겠는가”라고 했다. ‘노력하면 기회가 온다’는 말도 쉽게 못하겠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게 소중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체가 행복한 것 같아요. 성공에 대한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소극장에서 대극장으로 가는 게 누구에게는 성공의 기준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아니거든요.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행복일 수 있죠. 성공의 기준은 자기한테 있다고 봐요. 제가 지금 ‘위키드’를 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 아닌가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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