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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예술의 마지막 단계는 몸”… 역사의 실체, 신체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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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22 21:02:36 수정 : 2016-08-22 21: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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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중미술 대표작가 신학철
대규모 군중이 시청 앞 광장에 모인 모습과 거대한 몸의 형상이 중앙에 위치한 모습을 표현한 작품 '한국현대사 - 광장'(왼쪽). 민중의 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뒤집어진 세월호의 모습도 연상된다. 오른쪽은 ‘한국현대사 - 유체이탈’. 눈과 입이 뒤섞인 것은 거짓말로 뒤죽박죽이 된 정치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13년간 아내 병수발로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던 신학철(73) 화백이 최근 심장혈관 수술을 받았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다시 잡은 붓을 멈추고 몸 관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이 묻데요. 어찌 그리 오랫동안 두문불출하고 아내를 보살필 수 있었는지 궁금해했어요. 사실 저에겐 밥 먹는 일과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만큼 제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거지요.”

사실 그에겐 거창한 이유를 대는 것조차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그림에선 장자와 노자를 논하면서도 생활은 영 딴판인 작가들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예술의 마지막 단계는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짜 삶으로 들어가는 거지요. 생활과 그림이 일치돼야 합니다.”

신학철 화백이 수술 후 처음으로 시내 나들이를 했다. 그는 요즘 정치 돌아가는 모습에 화가 난다며, 이를 민중의 에너지로 승화시킨 것이 자신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추사가 그랬다고 했다. 최고의 아방가르드이자 모더니스트였다는 평가다. 그가 몸을 중시하는 것도 추사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투쟁 시기에 민중과 호흡을 같이하며 민중의 역사적 힘과 숨결을 몸으로 형상화했다. 한국의 대표적 민중미술 작가로 자리매김 되는 이유다.

사실 요즘은 ‘몸’이 중시되는 시대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나는 존재하기에 고로 생각한다’는 명제로 바뀌고 있다. 나는 내 신체의 일부이고 신체는 나 그 자체가 되고 있다. 그동안 철학(특히 서양철학)은 인간의 신체를 간과했다. 철학이 인간의 몸을 간과한 이래 학문적 지위나 위상을 상당 부분 과학에 내주게 되었다. 인지과학이 그 예다. 서양 철학의 중심적 개념( 시간, 사건과 원인, 마음, 자아, 도덕성 등)이 과거의 철학자들이 가정했던 것처럼 독립적인 개념적 근거를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신체적 활동을 통해서 발생하고 또 은유적으로 확장된 ‘신체화된’ 개념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적 영역이든 도덕적 영역이든 절대성을 자임하는 모든 이론적 개념은 그 자체로 허구라는 얘기다. 이데올로기가 그렇고 이념이 그렇다는 것이다. ‘신체화 된 마음’에 주목한다 할 수 있다.

신학철은 시대를 변화시키는 힘과 구조를 몸의 유기체적 총체로 표현한다. 콜라주, 포토몽타주 등의 기법을 통해 여러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의 이미지들을 화면 안에 끌어온다. 이미지들은 그로테스크하게 뒤엉킨, 하나의 커다란 몸으로 통합되며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현대 그림은 회화만 남아 있지 삶이 존재하지 않아요. 삼각지 그림이나 이발소 그림에는 오히려 꿈의 알갱이들이 있어요.”

1999년 국가보안법에 의해 이적표현물로 규정돼 검찰에 몰수된 그의 작품 ‘모내기’도 삼각지풍 이발소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고향 김천풍경에 통일의 꿈을 담았다. 그의 이런 행보는 우연히 접한 사진집 ‘사진으로 보는 한국 백년’(1978)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충격을 받고 한국 근현대사를 새로운 조형미로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민중미술 진영으로 합류하는 계기가 된다. ‘한국현대사’ 시리즈는 우리 민족이 겪었던 수난의 역사를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일제 시기와 독립운동, 해방을 거쳐 동족상잔의 전쟁과 분단, 전후의 굴절된 정치·사회사, 외래문화의 범람 등으로 이어지는 민중의 수난사를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형상화하여 미술계에 신선함으로 던져 주었다. 특히 대작 ‘한국현대사 ? 갑순이와 갑돌이’는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기억들을 화면에 성실하게 기록한 화가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민족사를 단지 ‘수난’이라는 부정적 시각에서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오는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과 민족문화의 힘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아 미래의 통일된 세계 내지는 바람직한 민족공동체에 대한 염원을 표현했다. 이것은 민중미술의 흐름 속에서 그가 획득한 긍정적 전망이자 중요한 성과다

“모더니즘 미술의 극복 방향을 모색하던 중에 그림엔 무엇보다도 강한 느낌, 강한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을 계기로 작품에 한국의 근현대사를 끌어들이게 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이 한국근현대사의 ‘기념비’적 그림으로 부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념비’는 어떤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행위의 산물로 이해된다. 하지만 들뢰즈에 의하면 ‘기념비’는 또한 우리의 일상적 시선과 지각 속에 포착되지 못했던 삶과 사물들의 근원적 모습을 드러내는 행위로서의 의미도 있다. 민중미술 연구자인 유혜종씨는 신학철이 다중의 역사적 경험과 동시대의 현실을 ‘몸’이라는 물질적인 형태로서 형상화하여 기념비적 성격을 갖는다고 평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는 관념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단지 역사를 몸의 실체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서구보다 한 걸음 늦게 시작된 산업화와 민주화의 현장은 치열했다.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를 체험한 당대의 미술가들이 그 역사적 경험에 영향을 받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어쩌면 우리가 순수하지 못하고, 어디에 얽매여 있고, 욕심부리는 가운데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어 그에게 멍에를 덧씌우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는 진실이 뭔가, 그림이 뭔가를 여전히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정치도, 경제도 알게 되지요.” 얼굴 형태가 괴기스러운 그의 작품 ‘한국현대사 - 유체이탈’은 우리 시대 지도자의 자화상이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이 어떤 것이든 마음대로 하고 바꾸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뻔한 거짓말도 밀어붙이고 마음대로 하는 것이 요즘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이 아닌가요. 뒤죽박죽 비정상의 내면의 모습이자 정치현실입니다. 종교지도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근현대사에서 큰 힘이 느껴진다는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등 근현대사의 비극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이른바 초혼곡이다. “이젠 우리도 우리 역사의 진혼곡을 써야 할 시점입니다. 죽은 자들의 메시지처럼 더 강한 것은 없어요.”

그는 이제 앞으로의 작품이 진혼곡이 됐으면 한다. 9월25일까지 ‘기념비적 몸의 풍경‘을 주제로 중국 작가 팡리쥔과 2인전이 열리는 학고재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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