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현실판 '키트' 가 온다… 2020년 자율주행차 양산

안전기준 확보 속도 낸다… 유엔 ‘WP. 29’ 가이드라인 마련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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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국 대표들이 스웨덴 스톡홀름에 모였다. 자율주행차 국제안전기준 마련을 위한 ‘자동명령조향기능(ACSF) 전문가 기술회의’였다. 회의에서는 테슬라 ‘모델S’ 차량의 운전자가 자율주행 모드 중 사망한 사고가 심도 있게 다뤄졌다. 자율주행 도중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운전자가 어느 시점에 개입해야 하는지, 운전자의 개입을 어느 정도로 강제할 것인지를 놓고 참석자들은 난상토론을 벌였다. 자율주행차 안전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각국 자동차 업계는 운전자 개입이 필요없는 실질적인 자율주행차 양산 시점을 2020년 이후로 점쳤다. 하지만 그간 우려했던 사고가 초기 단계의 자율주행 중에 발생하면서 안전기준과 법규 마련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최근 자율주행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G7(주요 7개국) 회원국 교통장관들이 일본에서 공동선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G7 공동선언, 미국 가이드라인… “선언적 의미”

3일(현지시간) 업계에 따르면 미국 교통부(DOT)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15개 항목의 자율주행차 가이드라인과 G7 교통장관들이 지난달 24일 마련한 공동선언은 모두 선언적인 내용들이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구글의 자율주행차 소프트웨어를 ‘운전자’로 인정했지만, 아직 전 세계 법규에서 차는 ‘사람에 의해 구동하는 기계’다. 미국 미시간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등 자동차 생산공장이 밀집한 지자체는 자율주행차 실험 주행을 폭넓게 허용하는 실험도시까지 만들었지만, 주행 요건을 까다롭게 규제한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15개 가이드라인은 향후 자율주행차를 어떻게 만들고 관리할지에 대해 큰 틀을 짜놓았다. 자율주행차가 오작동할 경우 어떻게 할지 대비책을 세워둬야 한다든지, NHTSA의 자율주행차 인증을 받아야 주행이 가능하다는 식이다. 탑승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보안유지 의무가 부여되고, 범죄로 악용될 수 있는 해킹 대비책도 마련돼야 한다. 충돌 시 탑승객 보호 방안, 최악의 상황에서 탑승객과 도로 위 보행자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지에 대한 윤리적 판단 사항도 포함됐다. 뉴욕타임스는 “안전기준이 미흡해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는 소비자 우려를 덜고, ‘과도한 규제’를 걱정하는 기업을 위해 모호하게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부는 “향후 제작과정에서 발생할 여러 변수를 고려한 탓에 구체화된 것이 전혀 없다”고 혹평했다. 아직 구체적인 자율주행차가 나오기 전이라서 법과 규제로 새 기술을 미리 제한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DOT 측도 “정부는 널리 알려야 할 부분에 집중했고, 나머지는 개발자 몫이라서 의도적으로 막연하게 표현한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G7 교통장관들의 선언문은 “전체 교통수단에서 확산할 혁신적인 자율주행에 대비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미국 가이드라인보다 더욱 포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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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구체적 가이드라인 나올 듯

ACSF 기술회의는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 ‘세계자동차기술기준조화포럼’(WP.29)의 6개 분과 중 하나인 ‘제동 및 주행분야 전문가회의’(GRRF IWGs) 산하에 마련된 비공식 전문가 기술회의들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물론 독일과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이 참여해 지난해 5월부터 구체적인 국제기준 마련을 위해 8차례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특정 안이 마련되면 전문가회의 등을 통해 국제법규로 구체화된다. 각국은 권고안인 이를 바탕으로 법을 다듬게 된다. 강제성은 없지만 논의 과정에 개입한 국가들은 이에 따르게 된다.

지난달 8차 회의에서는 모델S 사고와 관련해, 운전자가 핸들을 놓았을 때 경고를 해줘야 하는지와 정확히 몇 초 안에 위험을 알려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각 브랜드의 차종별로 비슷한 기능을 분석·보고, 수정을 촉구했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아우디 A8, BMW 7시리즈, 현대차 EQ900 등 전 세계 자동차들은 운전자가 핸들을 놓았을 때 4∼15초 안에 떨림 등의 방법으로 경고하고 있다. 이에 이 기능의 한계를 ‘30초 이하’에서 ‘15초 이하’로 수정하는 게 옳다는 것. 자율주행차의 속도를 시속 130㎞로 제한하자는 논의도 있는데, 이는 독일 아우토반을 상정했다. 이에 각국 도로의 속도제한을 감지, 이에 따르도록 하자는 안이 대안으로 나왔다. 자율주행 도중 운전자가 개입한 ‘위험 최소화 운전’ 상황임을 외부 다른 차량들에 알리는 시점도 논의 대상이다.

이처럼 각국은 WP.29에서 자율주행차의 미래를 위한 ‘총성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각국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안에 대한 보고서가 제출되고, 논의가 거듭된다. 업체 간 회의가 비공식적으로 따로 열리기도 한다. 통상 정부는 운전자 안전을 위해 최대한 보수적인 판단을 하고, 업체들은 기술 확대 등을 위해 파격적인 안을 요구한다. ACSF 기술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자동차안전연구원 이명수 박사는 “자율주행차 개발 등을 두고 국가 간,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지만 WP.29에서는 ‘운전자 안전’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 기준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은 WP.29 논의에 적극적이지 않다. 자동차산업이 워낙 큰 미국은 유럽·아시아 및 그외 국가와 별개의 독자 노선을 가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 생산업체가 대부분 글로벌 브랜드인 데다 자동차산업에 다소 보수적인 입장이라서 WP.29의 일부 회의에 나가 국제사회 논의를 ‘관망 중’이다.

GRRF는 내년 9월 회의에서 최종안을 만들어 그해 11월 WP.29 총회에서 공포하는 게 목표다. 각국이 이를 바탕으로 입법화를 서두르면 2018년 상반기에 특정 국가 법규에서 자율주행차 안전기준을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 차 업계, 안전·경제성 최우선 운전 힘든 노약자에 인기 끌 듯

세계 각국과 자동차업체들은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점을 두고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체로 2020년 이후를 말하는데, 무엇보다 안전성과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상용화는 불가능하다는 데에는 의견이 모인다.

소비자들이 자녀 등 가족을 자율주행차에 태우고 싶어할 만큼 안전하다는 게 먼저 입증돼야 하고, 지갑을 열 정도로 합리적인 가격이 책정돼야 거리에서 개인이 소유한 자율주행차가 목격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부분의 업체들은 자율주행차를 개발해 ‘라이드 셰어링(ride-sharing)’ 서비스를 먼저 실시하면서 안전성 등을 다듬어나갈 계획이다.

2021년까지 운전자 조작이 필요하지 않는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대량생산하겠다고 공표한 미국 포드는 이를 통해 “미국 내 연간 3만건의 교통 사망사고를 상당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라이드 셰어링은 운전이 불가능한 장애인과 노년층, 어린이 등의 이동수단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레벨4 이상 수준의 자율주행차 1050만대가 주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일본 야노경제연구소는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차가 2030년에 6555만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45년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 중 75%가 자율주행차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5년 안에 시내 중심가에서 사람이 운전하는 차량 운행이 금지되는 구간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있는 반면 테슬라 사망사고 등을 거론하며 상용화 시기가 더 늦춰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소프트웨어 운전자와 달리 사람 운전자는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둘을 따로 떼어내 운행하게 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자율주행차의 가격도 상용화 성공의 가늠자다.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처럼 친환경적 요소로 정부나 지자체 보조금을 받을 수 없고, 모든 기술이 집약된 탓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호칸 사무엘손 볼보 CEO는 지난 8월 “2021년부터 양산할 자율주행차는 럭셔리카의 ‘옵션’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정재영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