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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초상화엔 인품 드러나야… 반기문은 온화·YS는 솔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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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09 20:53:58 수정 : 2017-01-09 20: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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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인물화 대가’ 이원희 화백 지난달 유엔본부 1층 로비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초상화가 역대 총장들의 초상화 옆에 나란히 걸렸다. 반 전 총장이 유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는 순간이었다. 임기를 마친 반 전 총장의 12일 귀국을 앞두고 정치권은 벌써부터 술렁이고 있다. 이에 못지않게 반 전 총장의 초상화를 그린 작가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인물을 그린다는 것은 작가로서도 흔치 않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유화 인물화의 대가’로 불리는 이원희 화백(60·계명대 교수)이다.

“사람들은 권력자의 초상화를 그리면 권력과의 어떤 고리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 자리 하는 것 아니냐고 농을 거는 이들도 있지요. 사실 저에게 최고 권력은 그림입니다. 그 이상은 필요치 않아요.”

그는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여러 번 반 전 총장을 대면했다. 15분 단위의 바쁜 스케줄에도 작가의 입장을 고려해 오찬 자리를 통해서라도 소통의 시간을 할애하려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것도 집무실에 딸린 식당에서다. 지난해 한국 방문 시에는 일부 일정에 동행하도록 해 자신을 살펴보고 사진도 찍게 배려를 했을 정도다. 잠시 악수나 하고 의례적인 말만 던지고 자리를 뜨는 대부분의 인물들과는 달랐다. 어떤 이들은 제3자를 통해 사진만 달랑 건네주고 초상화를 부탁하기도 한다.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이원희 화백. 그는 사실적이면서도 인품이 드러나는 초상화를 그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반 전 총장은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매력을 지닌 인물이에요. 뭐가 필요한지 말할 수 있게 다가오는 온화함을 지녔다고 할 수 있어요. 불통의 시대에 필요한 덕목이지요.”

반 전 총장의 이목구비는 볼륨감이 없어 동자석을 연상시킨다.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나름의 완숙한 조형미라 할 수 있다. 작가들이 그리기엔 가장 어려운 대상이다.

“걱정을 했는데 어느 때보다 쉽게 그려져 저 스스로도 의아했어요. 저와 반 전 총장이 궁합(?)이 맞았나 봐요. 어쩌면 그것은 반 전 총장의 소통 능력에서 나오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현대화랑을 통해 반 전 총장의 초상화 제안을 받고 7개월 만에 마무리했다. 집무실을 배경으로 지구본에 오른손을 얹고 서 있는 모습이다. 유엔본부를 상징하는 푸른색 깃발과 반 전 총장의 푸른색 넥타이가 조화를 이루며 인물 중심인 역대 총장 초상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워싱턴DC 국립초상화박물관에 가보면 다양한 포즈의 미국 역대 대통령 초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집무실을 배경으로 하거나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어요.우린 하나같이 근엄한 영정사진 같아요.”


반기문 전 총장 초상화 앞에 앉아 있는 이원희 화백.
사실 대통령 초상화는 각국 초상화가들의 수준을 그대로 대변한다. 역대 유엔 사무총장의 초상화도 매한가지다.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와 화가가 만족하고, 보는 이가 공감해야 한다. 소위 초상화의 삼위일체다. 미화하는 것은 금물이고 사실적이면서 인품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 초상화에 있어서 인물의 외형 모사에만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인격과 정신까지 나타내야 한다는 전통적인 전신사조(傳神寫照) 초상화론과도 맥을 같이한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라는 관념 아래 치밀하게 그렸어요. 사실묘사의 ‘진실성’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았지요. 잘생긴 인물은 잘생긴 대로, 천연두를 앓았던 흔적이나 검버섯 같은 얼굴의 흠은 흠대로 진솔하게 그렸어요. 조선시대 초상화의 미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조선시대 초상화를 자료로 삼아 피부 관련 질병을 연구한 의학계의 논문이 나올 정도입니다.”

특히 조선후기 초상화는 입체화법이나 바닥처리의 투시도법까지 엿볼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이 남긴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카메라 옵스쿠라 기법까지 활용했다. 이 화백은 대학원 시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서직수 초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백색 도포를 입고 선 선비의 형형한 눈빛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조선 후기 초상화의 백미다. 어진을 그렸던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을 그렸다는 수작이다.


“조선시대에는 뛰어난 초상화가 있었는데 우리 시대에는 왜 없을까 의구심을 갖게 됐지요. 이당 김은호 선생이 고종 어진을 수묵으로 그리고, 나중에 유화로 자화상을 그렸는데, 유화는 도저히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형편이 없어요. 서양 회화가 도입되면서 유화 재료가 지닌 특질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던 거지요. 결국 재료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학생들과 함께 러시아 레핀스쿨로 연수를 가면서 유화 초상화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유럽 미술관들에 걸린 초상화들을 교과서로 삼았다. 그러면서도 전신사조 정신은 놓지 않았다.

이 화백은 김영삼 대통령 초상화도 그렸다. 직접 대면하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무려 1시간 동안 독대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가 국정원장도 길어야 30분 독대를 하는데 파격이었다고 했을 정도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솔직함에 우선 놀랐어요. 사적인 대화를 통해 인간적인 모습을 살필 수 있었지요. 피부 결이나 작은 안면 근육의 움직임까지도 세세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지요. 피부가 아기처럼 곱고 동안이었어요. 입꼬리에선 자신감이 묻어났지요.”

뭐니 뭐니 해도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본인은 만족하는데 가족들 중에 안 닮았다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그는 조용히 작업을 접는다.

“자식이나 손자, 부인의 시각이 제각각인 경우가 있어요. 같은 사람을 놓고도 관계성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가족 간에 소통이 부족했을 때 제각각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공인의 초상화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렸다면 초상화가로 입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초상화는 탄탄한 데생과 섬세한 붓질로 정평이 난 김인승 화백이 그렸다. 최규하 초상화는 심리까지 꿰뚫는 묘사로 유명했던 박득순 화백이, 김대중 전두환 이명박 초상화는 정형모 화백이 그렸다. 노태우 초상화는 김형근 화백의 작품이고, 노무현 초상화는 이종구 화백이 그렸다.

이 화백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초상화도 그렸다. 기업가들에게는 도회적인, 정치인들에게선 중의법적인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아마도 기업인들의 삶은 이해관계가 명확해야 하고, 정치인들은 이해관계가 상반된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라 인상도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는 25년간 지도층 인사와 재계·문화계 인물 300여 명의 초상 작업을 해 왔다.

“사진이 담는 것은 연출된 순간이라면 그림은 많은 시간 손을 통해 숙성된 것입니다. 눈과 마음으로 본 것이 총체적으로 하나의 아우라로 분출되는 거죠.”

그는 오늘도 고양시 덕양구 통일로 작업실에서 초상화와 씨름을 하고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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