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경으로 입직해 경찰서장을 두 차례 지낸 뒤 2013년 명예퇴직한 장신중(63) 경찰인권센터장은 ‘현시점에서 경찰개혁이 화두로 등장한 원인이 무엇이라 보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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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만난 장신중 경찰인권센터장은 “‘경찰 혁신’과 ‘더 나은 치안’을 위해선 경찰도 노동조합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권위주의 시절 경찰은 독재자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활용돼 왔지만 지금은 민주화됐다. 그런데도 민주경찰로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다시는 경찰이 정치편향적이고 시민을 도외시하는 조직이 되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직접 나섰다.”
지난 9일 강원 강릉 명주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은퇴한 지 약 4년이 지났지만 경찰개혁 의지는 현역 못지 않게 강하다. 2015년 말엔 30년 경찰 인생을 돌아보며 경찰개혁 필요성을 강조한 책 ‘경찰의 민낯’(좋은땅)을 작심하고 펴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경찰인권센터’를 열어 후배 경찰관들과의 소통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1982년 순경 공채로 입직한 장 센터장은 30년간 경찰에 몸담으며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과 충북경찰청 홍보담당관, 강릉·양구경찰서장 등을 지냈다.

◆“‘경찰노조’ 설립, 경찰의 탈정치화를 위한 해결책”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경찰청 내 경찰개혁위원회가 ‘경찰의 날’인 다음 달 21일에 맞춰 종합 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경찰개혁’에 초점이 맞춰졌다.
장 센터장은 ‘경찰노조’ 설립이야말로 경찰의 정치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청장을 정권이 임명하는 현 구조에서는 경찰이 정권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노조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견제할 수 없다. 정치경찰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굳어지는 것이다.”
반드시 노조가 있어야만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냐는 물음에 장 센터장은 이견이 용납되지 않는 기관에서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단체가 없으면 누구도 나설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개인이 비판적 의견을 내면 자기 신상을 보호받을 수 없다. 징계위원회를 열어 신상 털고 쫓아내면 그만이다. 비판하면 파면당하고 법적 다툼 끝에 결과가 뒤집혀 3년 뒤에 돌아오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다.”
노조가 정치편향적일 수도 않겠느냐는 우려를 제기하자 장 센터장도 가능성을 인정했다. 다만 민간기업 노조에 한해서였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국가공무원법이 그렇게 못 박고 있다. 해당 규정을 없애면 모를까 경찰노조가 정치 중립성을 잃는 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찰노조 설립 주장이 하루 이틀 나온 건 아니다. 그러나 쉽게 설립하기 어려운 이유는 “수사를 하는 공무원은 노조 설립을 할 수 없다”고 국가공무원법이 못 박고 있을 뿐 아니라, 과연 국민이 경찰노조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 센터장은 경찰 인권 향상이 곧 치안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노조 설립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다. 법은 고치면 된다.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치안이 유지되는 것이 정상인가. 조직 내 문제점을 지적한 이유로 신상에 위협을 받는 걸 막자는 것이다. 경찰관이 조직 내에서 존중받는다면 그만큼 더 시민을 존중할 것이고 더 나은 치안서비스로 보답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면 좋겠다.”

◆“비번이라고 출근을 안 해?”
순경부터 총경까지 7개 계급을 두루 거쳐 지역 경찰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장 센터장은 경찰관의 열악한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노조 설립은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무일지 짜놓은 걸 보라. 하루 14∼15시간 내내 근무시킨다. 경찰은 순찰과 적발까지 한다. 지구대·파출소에 하루만 가서 밤을 새워보라. 타인에게 멱살 잡히고 신고 출동 쫓아다니면서 하루만 밤새워보라. 그걸 평생 한다고 생각해보라. 몸에 무리가 안 갈 수 없다.”
노조가 없으면 왜 개선하기 어려운 것이냐고 짐짓 ‘딴죽’을 걸어보았다. 이에 “독재 정권부터 전해 내려오는 내부 관행인 듯 한데 (상관들은) 부하가 잠시라도 앉아있는 꼴을 못 본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장이든 과장이든 일선 지구대·파출소에 가서 소장이나 지구대장을 찾는다. 비번이라고 하면 ‘그렇다고 사무실을 안 나오냐’며 화를 내는 경우가 지금도 수두룩하다. 교육받으러 가면 사람 없는데 왜 가냐고 짜증 내고. 팀별 야간 근무자는 정원을 다 채워주지도 않으니 매번 다른 팀 인원이 ‘땜빵’ 근무를 하기 일쑤다.”
경찰서에 직원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지적도 있던데 인력을 재배치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장 센터장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어느 기관이든 ‘업무 배증의 법칙’, ‘부하 배증의 법칙’이 적용된다. 부서 하나 만들어놓으면 새로운 일을 계속 만든다. 다시 사람이 모자라게 된다. 해결이 안 된다.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보장받으려면 결국 노조 설립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쑤시개 들고 대기하고, 칫솔에 치약 짜 대기하고”
장 센터장은 경찰서장 재직 당시 관용차를 직접 운전한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기관장답지 못하다’는 게 이유였다. “계급은 특권이 아닌 개인의 업무 범위와 역할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라는 그는 조직 내 갑질 문화에 대해 지적을 할 때는 어느 때보다 힘주어 말했다.
“과거 강신명 경찰청장 시절 청장의 강릉경찰서 초도방문 계획서를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기억이 난다. 직원들과 악수한 뒤 손 닦을 수 있게 누군가 물수건 들고 대기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더라. 일선 직원들 손이 더럽다는 건가. 이게 다가 아니다. 식사 후 사용하라고 이쑤시개 들고 대기하게 하고, 칫솔에 치약까지 짜서 대기하고 있게 하고. 한 전직 경찰청 차장은 화장실에서 손 씻고 물기 닦을 휴지 들고 있게 하지 않았나.”
일반 행정기관도 노조가 생긴 후 악습이 사라지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분석한 장 센터장은 경찰노조가 조직문화 개선에 틀림없이 기여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끝으로 경찰노조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어떻게 설득력 있게 어필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현장 경찰관 각자의 인권이 보장받게 되면 그만큼 국민 권익을 위해서도 더 노력하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닌, 자발적으로 더 노력하게 될 것이다. 시민의 인권을 보살피고 치안을 제대로 챙기는 긍정적 역할을 할 거라 확신한다. 예쁘게 봐 달라.”
◆장신중 경찰인권센터장은? △1954년 9월 강원 강릉 출생△1982년 순경 공채로 경찰 입문△2011년 1월∼12월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2011년 12월∼2013년 4월 강원 강릉경찰서장△2013년 4월∼2013년 7월 충북경찰청 홍보담당관△2013년 7월∼2013년 10월 강원 양구경찰서장△2013년 10월31일 명예퇴직△저서 ‘경찰의 민낯’(2015)
강릉=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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