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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소소하게 삶의 위로를 주는 것이 많다. 콘크리트 담벼락 균열 사이에 뿌리를 내린 풀 한 포기나, 늦가을에 철모르고 피어난 붉은 5월의 장미에서 위대한 생의 의지를 목도하곤 한다. 하지만 사람이 주는 위로만큼 큰 것이 또 세상 어디 있을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나를 읽어내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가슴 벅찬 일이다. 그 떨림 하나로 우리는 지옥을 견딜 수도 있다.

며칠 전 병원에 입원했다. 특별한 병증이 있어서가 아니고, 차일피일 미루던 건강검진을 위해 입원한 것이다. 하긴 그동안 전혀 아프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딘가 의심쩍은 불편함으로 병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범상치 않은 가족병력은 나를 병원으로 떠밀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음)라고, 환자복을 입고 병원에 누워있으려니 정말 환자가 된 듯 감상적으로 변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청승까지는 아니었지만 불현듯 타인이 그리웠다. 포장하거나 치장하지 않은 날것의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나쁘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지켜보며 응원해주겠노라고 격려해주는 그런 사람이 그리웠다. 그동안 무던히도 삶에 지쳐있었던 모양이었다.

헌데 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겐 그런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한가하게 앉아 세상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은밀하다면 은밀할 시간과 추억을 나눠 갖지 못했다. 언제나 내 머릿속에는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일의 목록이 우선순위로 정리돼 있었고, 사이보그처럼 나는 그 목록대로 따랐을 뿐이었다.

상처에 대한 걱정 없이 나를 편하게 부려놓을 수 있는 사람, 내 지난날을 위로하고 치하하며 격려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에게 있던가. 미안해하지 않으며 시간을 빼앗아도 좋을 타인이 한 명도 내 주변에 없다는 사실에 나는 우울해졌다. 아니 혹 모를 일이다. 환자복을 입고 병실에 누워있는 그 시각, 내가 손을 내밀었으면 누군가는 총총 달려와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러니 어찌 날것의 나를 보여주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위로를 받고 싶으면 먼저 다가가고 신호를 보내야 할 텐데, 나는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쭈뼛, 돋아난 생각 하나가 나를 위로했다. 생래적 고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은 없으니, 어쩌면 그 누군가도 나처럼 위로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위로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면 될 터. 잘 살아왔어. 나쁘지 않았어. 앞으로도 잘 살 거야. 그렇지만 그 애틋한 격려를 수신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기왕 다 외로울 바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면 세상이 따뜻해지지 않겠는가. 누가 됐든 내가 건네는 위로의 말이 이 생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 이 시각 나는 여전히 타인이 그립고, 위로가 필요하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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