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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美도 ICO 광풍 '몸살'…유명인 내세운 묻지마 투자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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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18 20:45:26 수정 : 2017-12-18 20: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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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패리스 힐튼 등 동원 자금모집/사업가치보다 홍보에 휘말릴 가능성/투자금 ‘휴지 조각’ 우려 목소리 불구/올 모금액 4조원… 1년새 40배 급성장
지난 9월 3일 힐튼호텔 창립자의 증손녀이자 미국 사교계 스타인 패리스 힐튼은 트위터에 ‘새로운 리디안 코인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는 글을 게시했다. 블록체인 기업 리디안 코인의 ICO(Initial Coin Offering·가상화폐공개)에 투자하겠다는 뜻이었다. 팔로어 수만 1700만명이 넘는 힐튼의 계정에 이 글이 올라오자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리디안 코인은 ‘패리스 코인’이라 불리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포브스지 등 미국 언론은 모기업 대표의 가정폭력, 직장 내 괴롭힘 등과 관련한 각종 소송을 보도하며 도덕성과 기업 지속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뒤늦게 힐튼은 해당 글을 삭제했다.

최근 스타트업 기업이 유명인을 내세워 ICO를 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미국 금융당국이 ‘묻지마 투자’ 경고를 하고 나섰다. 한국 정부는 ICO가 가상화폐와 관련됐다는 이유로 금지를 선언한 상태다. 하지만 신생기업이 자금모집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고 블록체인 산업이 성장하는 과도기인 만큼 무작정 막기보다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 ICO 1년 새 40배 급성장

18일 ICO 정보 사이트인 코인스케쥴에 따르면 올해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진행된 ICO는 234건이고, 모금액은 36억7513만5293달러(약 4조59억원)이다. 지난해 46건, 9638만9917달러(약 1051억원)에서 모금 규모가 40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들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은 것이다.

ICO는 주식시장의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와 비슷하게 새로운 가상화폐를 내놓으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는 일종의 크라우드펀딩이다. 스타트업이 사업 초기 단계에서 계획을 설명하는 백서를 공개하고 투자자에게 비트코인 등으로 자금을 모아 그에 상응하는 자체 개발 가상화폐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주로 가상화폐 플랫폼, 금융, 결제, 데이터저장 등 블록체인 기반의 사업이 대상이 된다. 지난 9월 파일코인은 이용자가 다른 이용자 컴퓨터의 남는 저장 공간을 빌릴 수 있도록 해주는 분산형 데이터저장 아이디어로 2억5700만달러(약 2801억원)를 모금해 올해 가장 성공적인 ICO로 기록됐다. 이더리움 플랫폼 스테이터스는 3시간 만에 1억달러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가상화폐를 통한 자금모금의 성공률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ICO 정보기업 토큰데이터를 인용해 올 11월까지 진행된 ICO 가운데 54%만 성공적으로 마감했으며 성공률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라고 보도했다. 31%는 ICO 이후 얼마나 자금을 모집했는지 공개하지 않았고, 15%는 모집 실패로 투자자가 환급을 받거나 아예 모집 웹사이트가 없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모집 후 사업이 지지부진해 소송으로 비화된 사례도 있다. 지난 7월 ICO로 2억3200만달러(약 2529억원)라는 대규모 자금을 유치한 테조스는 개발자와 운영진 간 분쟁으로 사업 계획이 미뤄지면서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미국은 ICO 증권법 적용해 규제

미국에서는 ICO가 경쟁적으로 늘어나면서 전문성 없는 스타들이 홍보에 동원되자 금융당국이 나섰다. 지난달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개인이 ICO 홍보의 근거와 홍보를 대가로 받는 보상 등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 불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칫 원금 전체를 잃을 수도 있을 만큼 위험성이 높은 투자지만 사업 가치에 대한 판단보다 홍보에 현혹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힐튼과 비슷한 시기에 유명 권투 선수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배우 제이미 폭스도 특정 ICO에 참여하겠다는 글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시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호주, 스위스 등이 ICO를 규제 체제에 넣어 관리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ICO를 금지하는 대신 증권법을 적용하고, 소비자들에게는 투자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영국 금융감독원은 최근 ‘ICO의 위험에 관한 경고’라는 보고서를 통해 ICO를 통해 받은 코인이 실질 가치가 없는 경우가 많고 ICO가 매우 투기적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나라와 중국, 베트남은 ICO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지난 9월 중국 정부는 ICO를 불법행위라고 판단해 개인이나 단체에 ICO 금지령을 내렸고, 한국 정부도 최근 ICO 금지 방침을 명확히 했다.

금융 규제가 거의 없어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지브롤터, 케이맨제도, 모리셔스 등은 ICO를 신기술 사업 유치 측면에서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다.
◆투자자보호 방향으로 규제해야

규제당국이 우려하는 것은 초기 아이디어 단계의 프로젝트에 가능성만을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판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높은 수익을 노릴 수 있는 만큼 원금 손실 위험도 매우 크다. 지급받은 가상화폐가 무용지물이 돼도 보상받기가 힘들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백서를 보면 제대로 된 사업계획 없이 왜 기술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만 밝힌 것이 대부분이며, 투자자에게 배당 등 혜택이 돌아가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며 “한마디로 투자자보호가 제로”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ICO를 양성화하려는 추세와 반대로 국내에서 ICO를 전면 금지한 것에 대해서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에서 진행했던 ICO는 10개가 채 안 될 정도로 초기 단계다. 스타트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유용한 수단인데도 가상화폐를 발급한다는 이유로 막는다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부 교수는 “ICO는 벤처 스타트업이 사업계획서를 갖고 엔젤투자자에게 발표하고 투자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업계획서(백서)를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가상화폐로 투자받는 시스템일 뿐”이라며 “무작정 금지할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투자에 참고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보고 평가하는 자율적인 기구를 만드는 방법으로 돕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가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마련해 ICO 시장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규제해야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홍 교수는 “다른 자금조달은 허용하고 ICO는 막는다면 형평성 문제가 있어 앞으로 투자자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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