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쫓길 이유도 없는 상황에서 이 사건 유일한 생존자인 삼형제 엄마 B씨의 “사고 당일 친정집에 가 있었다”고 하는 등 거짓말 행각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
수사팀이 생존자의 사생활만 고려한 채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A(46·대기업 간부)에 대한 ‘사자(死者) 명예’는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점과 이 사건에 쏠린 의혹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피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3월29일 오전 5시39분 불이 나 아들 삼형제와 아빠가 동시에 숨진 부산 모 아파트 안방 화장실과 입구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부산경찰청은 지난 11일 오후 ‘OO아파트 화재 일가족 4명 사망사건 최종 수사결과’ 브리핑 자료를 통해 변사자 A씨가 아파트 투자로 인한 부부갈등 및 자금문제, 직장문제 등 복합적인 이유로 아들 삼형제가 자는 틈을 이용해 집에 보관 중이던 라이터로 안방 건조대에 있던 의류 등에 불을 붙여 본인을 포함한 일가족 4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방화 의심은 되나 증거·진술이 확보되지 않아 변사사건으로 내사종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경찰은 사고 당일 집을 비운 삼형제 엄마 B씨가 계모임을 끝내고 어느 곳에서 잤는지조차 밝히지 않았다.
사건 초기 B씨는 남편인 A씨 유족에게 “사고 당일 친정에서 잤다”고 밝혔으나, 경찰 조사 결과 친정에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B씨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지난 3월29일 오전 5시39분 불이 나 아들 삼형제와 함께 숨진 A(46)씨 아파트 안방 문 앞에 일산화탄소가 많이 배출되는 물품이 불에 탄 채 수북이 쌓여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B씨의 거짓말은 이뿐이 아니다. B씨는 사건 직후 장례식장에서도 문상 온 조문객들에게 “아이 아빠가 나를 너무 사랑해 우리 가정은 화목했고 싸운 적도 한 번도 없었다”며 “회사가 아이들 아빠를 괴롭혀서 저렇게 한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거짓말이었다는 게 시동생 C(41)씨는 주장한다. C씨는 지난달 10일 발표한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 불만을 품고 16일 오후 관할 동래경찰서에 A4용지 8쪽짜리 추가수사요청서를 제출했다.
C씨는 이 추가수사요청서에서 “화재사고 이틀 전 평소 시댁에 전화도 하지 않던 형수가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건 뒤 들으라는 듯 전화기 너머로 형과 형수가 격앙된 큰 목소리로 싸운 사실이 있고, 아버지가 놀라 저한테 ‘형과 통화 좀 해보라’며 전화를 걸어왔다”며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도 극도로 흥분한 형수의 고함이 계속 들리는 등 결코 화목한 가정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삼형제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A(46)씨의 남동생 C씨가 지난달 16일 부산 동래경찰서에 제출한 A4용지 8쪽짜리 ‘추가수사요청서’ 3P. 남동생 C씨 제공 |
C씨는 특히 추가수사요청서 3페이지에 “형수가 결혼 후 시댁에 상식적으로 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고, 제 아버지 또한 형수로 인한 스트레스로 2007년 컴퓨터에 직접 작성한 유언장이 가슴 아프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고 슬픈 가정사를 털어놓았다.
C씨는 “당시 형수가 전화통화나 시댁에 와서 흥분한 상태에서 수시로 폭언을 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죽고 싶을 정도다. 혹시 내가 나쁜 일을 당하면 형수와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해놨으니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며 “이번 화재사고 후 아버지도 ‘형수와 형의 불화문제로 형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나’하고 생각하신다”고 털어놨다.
C씨는 “형수는 시댁 어른들이나 형제간에도 거짓말로 분란을 일으키는 일이 많았고 결혼 후 4∼5년 후에는 아예 시댁과 연을 끊은 상황이었다”며 “3년 전쯤 아버지께서 형에게 1억5000만원을 주며 5000만원으로 차를 바꾸고, 1억은 혹 집에 빚이 있거든 보태쓰라고 하신 후 2년 전부터 연간 명절날 아침에만 두 번 잠깐 시댁에 오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C씨는 또 “형수는 사고 당일 장례식장에서 ‘OO이 아빠 왜 그랬어. 애들까지 데려가면 어떻게 해. 나는 어떻게 살라고’라며 절규하다가 조문객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갑자기 돌변해) ‘우리 가족은 아무 문제 없었어. 우리 가족은 화목했어. OO이 아빠는 나를 너무 사랑했어. 싸운 적도 한 번도 없었고 회사가 OO 아빠를 너무 괴롭혀서 (자살)한 거야. 저 사람은 나만 사랑해서 나 힘들까 봐 마음속 얘기를 안 해서 나는 저 사람 힘든 것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고 재수사요청서에 적시했다. 특히 C씨는 추가수사요청서에서 “형수가 정신적으로 자살을 부추기거나 방조하였을 가능성이 너무나 크다고 생각되고,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형수 B씨는 지난 3월31일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침통한 장의버스 안에서 시동생 C씨에게 다가와 “애들 앞으로 들어놓은 생명보험 들어놓은 것 그거 내가 탈 수 있어?”하며 보험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러나 동래경찰서 수사팀은 유족의 이 같은 진술을 모조리 무시한 채 지난 11일 오후 발표한 최종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단순 변사사건이라고 밝혔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최종수사 결과 발표는 원래 계획이 잡혀있던 부분이다”고 해명했다.
유족 C씨는 “중간수사 발표와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고 앞으로 생각을 정리해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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