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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관 한 삼일로창고극장. 서울문화재단제공 |
“우리는 큰 극장 공연만 봤는데, 여기는 조명기가 머리 위에 있고, 사람들이 무대를 뱅 둘러 앉았어요. 이게 공연장인가 싶었죠. 그런데 공연을 보면 볼수록 감동이 이는 거예요. 배우들의 땀과 호흡, 대사가 바로 앞에서 밀려오지 않습니까. 관객이고 배우고 없어요. 그네들이 소리 지르니 저도 소리 지르는 것 같고, 분노하면 같이 분노하는 것 같고. ‘아 이게 소극장이구나, 야 소극장이 대단한 거구나’를 느꼈습니다.”
1975년 안진환씨는 소극장 공연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그는 중·대극장 연극을 보며 데이트하곤 했다. 어느날 명동성당 인근까지 걸어온 그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선 걸 보고 ‘저게 뭐냐’고 물었다. 그렇게 삼일로창고극장(당시 명칭 에저또 소극장)의 최초 관객이 됐다. 당시 그가 본 작품이 극단 에저또의 ‘뱀’이었다.
1970년대 소극장 운동을 이끈 삼일로창고극장이 지난 22일 재개관했다. 2015년 10월 폐관 이후 2년8개월 만이다. 이날 재개관 행사에는 안씨를 비롯해 시민 11명이 무대에 올라 이 극장에 얽힌 추억을 펼쳐놓았다. 안씨는 “삼일로창고극장이 소극장 운동의 효시였고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단 생각에 항상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서울문화재단 오진이 전문위원은 “1977, 78년쯤 고등학생이었지만 유신 치하에서 부조리함을 깨닫고 있었다”며 “그 탈출구로 창고극장의 실험극들을 제법 보러 왔다”고 회상했다. 오 위원은 “특히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이오네스코의 ‘의자들’에 나온 주호성 배우의 연기를 좋아해 꽃도 사갔다”며 웃었다.
이들의 증언처럼 명동성당 옆에 자리 잡은 삼일로창고극장은 1970년대 소극장 운동의 발원지로 꼽힌다. 이곳은 1958년 건축된 가정집이지만 1975년 연출가 방태수가 임차해 극단 에저또 단원들과 땅바닥을 파 극장으로 개조했다. 이후 주인이 바뀌고, 고(故) 추송웅이 공연한 1인극 ‘빨간 피터의 고백’이 첫선을 보였다. 막을 올린 지 4개월 만에 6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 후로도 이 극장은 부침을 거듭하며 총 여섯 번의 개관과 다섯 번의 폐관을 겪었다. 40년간 279개 작품이 이 극장을 거쳐갔다.
서울시는 이 같은 공간적·역사적 의미를 이어가기 위해 삼일로창고극장을 10년간 장기임대해 새 숨결을 불어넣었다. 위탁운영은 서울문화재단이 맡는다. 재개관하는 삼일로창고극장은 1975년 개관 당시 형태를 최대한 복원해 60∼80석규모의 가변형 무대로 조성했다. 재개관 기념으로 29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빨간 피터의 고백’의 오마주 공연인 ‘빨간 피터들’이 공연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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