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기독교 매체가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자 기사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며 파장을 낳았다. 누리꾼들은 “수술할 때 마취는 왜 하냐” “여자보고 죽으란 소리냐”라며 비난 댓글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씨의 에세이를 확인한 결과 누리꾼들이 비판하듯이 일방적으로 무통주사를 결정한 게 아니라 부부간의 이야기와 합의 속에서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종교적 신념 차원만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감안한 종합적 판단 속에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도 종교적 이유를 떠나 출산 시 무통주사는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라고 설명한다. 무통주사가 분만을 지연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꼭 맞지 않아도 문제될 것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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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한 종교지에 실린 이영표 해설위원 칼럼. 출처=홍성사 |
이씨의 ‘무통주사’ 논란의 발단은 한 개혁 성향의 인터넷 기독교 신문의 보도였다. 해당 매체는 지난 6월 이씨가 발간한 에세이 <말하지 않아야 할 때>의 내용을 인용해 ‘이영표 ‘창세기 읽고 아내 출산 때 무통주사 거부’’라는 제목의 기사를 지난 1일 작성해 내보냈다.
에세이에 따르면 이씨는 셋째 출산 당시 성경의 ‘창세기 3장 16절’을 읽은 뒤 무통주사 사용에 대해 “주님께서 주신 해산의 고통이라면 피하지 말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이씨가 읽었다는 ‘창세기 3장 16절’은 “여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임신의 수고로움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네가 괴로움 속에서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너는 남편을 지배하려 하나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언론사는 이어 무통주사 시술이 영국에 처음 소개됐을 때 과학의 진보를 부정한 기독교 일화를 소개하며 침신대 기민석 교수의 칼럼을 인용해 “참 우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어디 무통분만이 비성서적이기에 시술하지 말아야한다는 목사가 있나”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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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해설위원. 연합뉴스 |
기독교 인터넷 신문의 문제제기에 일부 누리꾼은 남편인 이씨가 무통주사 여부를 일방적으로 결정한 점을 비판하며 거들고 나섰다. 그렇다면 아내에게 무통주사 없이 출산을 권한 이씨의 행동은 비난받을 만한 것인가.
기자가 이씨의 에세이 <말하지 않아야 할 때>를 확인한 결과 이씨 부부는 첫째, 둘째 아이를 낳을 때도 무통주사를 사용하지 않았고 셋째를 낳을 때도 아내는 이를 알고 있었고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에세이에서 “첫째와 둘째 모두 무통주사 없이 출산하여 출산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아내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내 의견에 따라 무통주사를 맞지 않고 출산하기로 했다”고 고백했다.
즉 누리꾼들이 비판하듯이 이씨가 일방적으로 무통주사를 결정한 게 아니라 부부간의 이야기와 동의 속에서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종교적 신념 차원만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판단 속에서 이뤄진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문가 “무통주사 분만 지연시킬 수 있어…필수 아냐”
전문가들도 종교적 이유를 벗어나 의료적으로도 출산 시 무통주사는 필수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무통주사가 분만을 지연시킬 수 있고 척추부근을 만지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며 “무통주사는 통증을 완화하는 것이지 없애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무통주사를 놓지 않은 것이 의학적으로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무통주사를 놓지 않아 산모의 위험을 방치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 “위험 상황에서는 다른 조치를 취하는 것이지 무통주사와 전혀 상관이 없다”며 “무통주사는 필수가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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