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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2015년 전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이 웹하드에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지인을 통해 전해들은 순간부터 A씨의 악몽은 시작됐다. 해당 웹하드 업체에 전화를 걸어 해당 영상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업체는 “경찰의 협조가 있어야 삭제가 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수 백만원을 들여 디지털장의사 업체에 삭제를 의뢰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또 영상이 나올지 몰라 불안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비웃고 수근거리는 것만 같아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다. 자살 시도도 수 차례였다. A씨는 “가해자는 멀쩡하게 살아가는데 왜 피해자인 내가 고통을 받아야하는거냐”고 토로했다.
A씨의 사연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모임 웹사이트에 올라온 피해 사례들을 재구성한 내용이다. 이처럼 디지털성범죄는 피해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범죄임에도 정작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쉽지 않다.
최근 걸그룹 카라 출신 방송인 구하라(27)씨와 전 남자친구 최모(27)씨의 쌍방폭행 사건이 과거 성관계 촬영 영상 협박 논란으로 불거지면서 몰래카메라 등 디지털성범죄 처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4월 개소한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운영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따르면 지원센터 운영 100일 만에 총 1040명의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신고했다. 지원센터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정부가 피해자에 대한 상담부터 삭제,수사, 법률·의료·보호시설 연계 등을 제공한다. 전체 피해 2358건 가운데 ‘유포’ 피해가 998건(42.3%)으로 가장 많았고 ‘불법촬영’이 795건(33.7%)로 뒤를 이었다. 피해자 한 명당 많게는 1000건까지 유포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원건수는 총 7994건이었고 이 중 삭제 지원이 5956건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에서 피해자 지원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무한 복제와 유포가 가능한 디지털 자료의 특성상 한번 유포된 영상이 재유포되거나 유통되는 것을 막기가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최초 가해자 뿐만 아니라 유포·재유포, 유통까지 강력하게 제재할 수단을 마련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1심 판결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인원은 7446명이었다. 그 중 징역·금고형을 받은 피고인은 647명으로 전체 8.7%에 그쳤다. 벌금형이 4096명(55%)으로 가장 많았고 집행유예 2068명(27.8%)가 그 뒤를 이었다. 대부분 벌금을 내거나 집행유예라는 가벼운 처벌에 그쳤다. 디지털 성범죄 해결의 난점이 ‘무한대로 확산 또는 유통이 가능하다’는 점이지만 유포에 대한 처벌은 더 적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유포) 1심 판결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6년간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인원은 1680명이었다. 그 중 징역·금고형을 받은 피고인은 30명으로 1.8%에 그쳤다. 재산형(벌금형)이 924명(54.3%)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집행유예 274명(16.3%)이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회에 계류 중인 디지털성범죄 관련 법안은 132개다. 자신의 몸을 촬영한 촬영물도 타인 동의 없이 유포한 경우 성범죄로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과 영리목적 불법촬영범죄를 징역형으로만 처벌하는 개정안 등이 포함돼 있다.
남인순 의원은 “불법촬영 관련 법을 국회에서 신속히 통과시켜 가해자를 엄벌해야한다”며 “자신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을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유포한 경우 처벌가능하도록 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유포했을 경우 징역형으로만 처벌하는 것, 불법촬영물 유통을 통한 범죄 수익의 몰수·추징하는 개정안 등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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