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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예방” vs “실효성 없어”...논란 거세지는 ‘여성 우선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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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10 09:00:00 수정 : 2018-11-09 20: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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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여성우선주차장①] 실효성 논란에 폐지 청원도 남성 직장인 박모(31)씨는 주말 쇼핑몰에서 ‘주차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분홍색 ‘여성 우선 주차구역’에 차를 대곤 한다. 박씨는 “영 찝찝해서 되도록 일반 주차 구역에 주차하려 하지만 자리가 없을 땐 어쩔 수 없다”며 “어머니나 여자 친구와 탔을 땐 그래도 ‘동승자가 여자’라고 자기 합리화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성 우선 주차 구역에 차를 대도) 처벌을 안 받는단 소리를 듣긴 했는데 그래도 왠지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아 눈치를 보게 된다”며 “주변만 봐도 나보다 훨씬 주차를 잘하는 여성 운전자도 많은데 가끔 억울하다”고 덧붙였다.

2009년 여성 행복 정책의 하나로 의무화된 ‘여성 우선 주차장’(여성주차장)제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많은 남성들도 비판하는 데다가 여성 일부도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고 비판에 나서고 있어서다.

주차에 서툰 여성을 배려하고, 여성을 범죄에서 보호하며, 임신부 및 유아나 어린이를 동반한 운전자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게 목적이었지만 제도 시행 후 근 10년이 흐른 지금, 여성주차장은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 여성이 행복한 ‘여행주차장’ 의무화
연합뉴스

서울시의 여성주차장, ‘여행주차장’은 2009년 서울시가 당시 추진했던 ‘여행(女幸·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서울시는 조례(제25조의2)로 주차대수 규모가 30대 이상인 주차 구역에는 총주차 대수의 10% 이상을 여행주차장으로 만들도록 했다. 해당 주차장은 분홍색 실선으로 구획을 나누고 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 마크를 표시해 여성주차장임을 표시한다.

여성주차장 설치 위치는 다음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즉 △사각이 없는 밝은 위치 △주차장 출입구 또는 주차관리원(주차부스)과 근접해 접근성 및 이동성, 안전성이 확보되는 장소 △폐쇄회로(CC)TV 감시가 용이하고 통행이 빈번한 위치 △차량출입구 또는 주차관리원이나 승강기에서 장애인 주차구획 다음으로 근접한 곳 등이 그것이다. 서울시는 여성주차장을 만듦으로써 여성 대상 강력 범죄를 막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범죄의 표적이 된 ‘여성주차장’... 실효성 논란

‘트렁크 살인 사건’ 범행 현장을 재연하는 김일곤. 연합뉴스

끊이지 않는 주차장 범죄는 여성주차장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 일부 범죄자들은 여성주차장에서 피해자를 물색해 실행에 옮겼다고 증언했다. 지난 2015년 9월 충청남도 아산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피의자 김일곤은 30대 여성 운전자를 차량째 납치해 살해했다. 당시 주차장 CCTV 영상은 큰 기둥 때문에 범죄 현장이 제대로 녹화되지 않아 초동수사에 어려움을 겪으며 여성이 결국 생명을 잃고 말았다. 김일곤은 범행 전 경기도 고양시 한 마트 지하주차장에서 또 다른 30대 여성을 위협해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6월 경남 창원 골프 연습장 주차장에서 귀가하려던 주부도 변을 당했다. 범인 심천우는 금품갈취가 목적이었고 고급 외제 승용차를 운전하는 여성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진술했다.

경찰통계에 따르면 주차장은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10대 장소 중 1곳이다. 어둡고 자동차나 기둥이 많은 주차장은 시야 확보가 어렵다. 게다가 범죄자가 차체가 높은 차량이나 기둥 뒤에 숨어있다가 피해자를 노릴 위험도 있다. 피해자가 차 안에 갇히면 구조 요청이 어려운 것도 문제다. 또한 CCTV가 있어도 차량이 밀집돼 있거나 기둥이 있으면 사각지대가 생기기도 한다.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2017년 주차장에서 2만936건의 범죄가 발생했으며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죄는 224건이었다. 특히 성폭력 범죄는 162건으로 전체 강력범죄 중 72%를 차지했다.

◆‘성평등’ ‘김여사’ 등 여러 방면에서 공격받는 여성주차장
한 운전자가 여성 우선 주차 구역 4곳을 차지한 사진.보배드림 캡처

여성주차장이 공격받는 건 보안 때문만이 아니다. 남성들을 중심으로 “여성에게만 우선 주차구획이 배정되는 건 성평등에 어긋난다”는 반발도 크다.

얼마 전 자동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여성주차구역 4곳을 차지해 주차한 차량의 사진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당 글에 누리꾼들은 “아무래도 여혐 운전자인 듯” “작정한 듯 보인다” 등의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외에도 온라인상에선 여성주차장을 비난하는 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성평등을 이유로 여성주차장 폐지를 원하는 이들은 여성 운전자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로 그다지 낮지 않은 점을 주요 근거로 든다. 실제 경찰청에 따르면 여성 운전면허 소지자 비율은 2015년 3029만3621명 중 1237만3038명(40.8%), 2016년 총 3119만359명 중 1289만8375명(41.3%)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운전자 성비가 비슷한 상황에 여성에게만 우선 주차구획을 배정하는 것은 특혜라는 주장이다.

여성주차장이 ‘여성은 운전에 서툴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 여성주차장은 일반 규격(2.0mX5.0m)보다 조금 더 커서(2.3mX5.0m) 주차하기 용이한 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운전을 못하고 황당한 사고를 낸다며 여성 운전자를 ‘김여사’라 희화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김여사’는 고정관념이 낳은 차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통계를 살펴보면 여성 가해운전자의 교통사고 비중은 남성보다 훨씬 낮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5년 총 23만35건 중 여성 운전자 가해 비율은 4만3990건으로 18.9%였고, 2016년 총 22만917건 중 4만3506건으로 19.8%였다.

자녀가 있는 여성 운전자를 배려해 입구 가까이에 여성주차장을 배정했다는 의견도 비판을 받는다. 차에서 내린 아이가 주차장 입구까지 가는 동안 차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비했다는 주장인데 이 또한 일부 운전자들은 “남성은 아이를 데리고 주차장에 가지 않느냐” “마치 여성이 양육의 주된 책임을 맡고 있다는 편견”이라 꼬집었다.

◆처벌 규정 없지만 거부감...“교통 약자 주차장 변경” 청원도
연합뉴스

여성주차장을 남성이 이용해도 처벌할 근거는 없다. 어디까지나 ‘전용’이 아니고 ‘우선’이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이들은 ‘심리적 거부감’을 이유로 여성주차장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대중교통의 임산부 전용석에 비임산부가 앉아도 제재는 받지 않으나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이유라고 전한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교통약자 우선 주차장’이다. 지난 9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성전용’ 주차칸을 폐지하고 ‘교통약자’ 주차칸으로 바꿔주세요”란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여성전용 주차칸을 운영하는 것은 1)모든 여성이 운전에 미숙한 교통약자라는 편견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2) 남성은 운전 경력이 짧아도 교통 약자가 될 수 없다는 불평등한 인식을 갖는 것”이라며 “여성전용 주차칸을 교통약자 주차칸으로 바꿔달라”고 주장했다. “교통약자에는 성별이 없다. 성별에 따른 편견을 없애달라”는 취지에서다. 이는 노인, 임산부, 초보 운전자 등을 교통약자로 지정해 교통약자 우선 주차 구획을 만들자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정부기관이 따로 교통약자를 위한 주차장을 마련할 계획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서울시는 내년 상반기까지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공공기관에 임산부 전용 주차장을 설치를 완료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처벌 조항이 없지만 임산부 전용 주차장이 임산부를 위한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과 같이 시민분들의 협조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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