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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역 사건, 패딩테러…' 거짓 여혐 사건에 미투 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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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21 07:00:00 수정 : 2019-01-21 0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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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 테러는 신고자 착각/ 이수역 폭행 여성들 발로 차인 증거 없어 / 정작 공분 살 미투 사건들 폄훼당할까 우려 최근 이른바 ‘여혐범죄’ 의혹을 받으며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된 사건들이 속속 거짓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 확인이 안됐거나 일방의 주장만을 담은 글들이 이념적 프레임을 쓰고 널리 퍼지면서 선량한 피해자를 낳고 있는 탓이다. 일각에서는 허위 여혐사건의 파장으로 인해 주목받아야 할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사건들이 되레 가려지고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패딩, 집 나설 때부터 찢겨 있어”

서울 지하철경찰대는 21일 SNS 공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하철 여성 패딩 훼손’ 사건은 신고자 착각으로 인한 오인신고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21·여)씨는 지난해 12월31일 인천 남동경찰서의 한 지구대를 찾아 “수인선소래포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환승해 인천 지하철 1호선 예술회관역에서 내렸다”며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가 칼로 패딩을 그은 것 같다”고 신고했다. A씨의 사연은 이달 1일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여성을 혐오하는 한 남성이 무작위로 여성들의 패딩을 찢고 다녔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이 퍼졌다.
지하철에서 패딩 찢기 테러를 당했다며 SNS에 올린 사진.

유사 사례가 해당 글의 댓글로 달리는 등 속속 인터넷 공간을 통해 게시되면서 ‘여혐 사건’ 의혹은 더 짙어졌다. 실제 ‘패딩 테러’를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한 사건도 2건이나 됐다. 지난 8일과 10일 두 여성이 지하철에서 예리한 도구에 의해 패딩이 찢기는 피해를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이후 사건의 경위나 가해자의 성별도 확인되지 않은 채 여성 혐오자나 변태 성욕자의 소행이라는 분석이 나오며 여성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패딩을 흉기로 찢은 사람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A씨가 집에서 나올 때부터 패딩이 찢어져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8일 신고된 사건도 신고자가 지하철에 탑승하기 전부터 패딩이 찢어져 있었고, 10일 신고된 사건 역시 신고자가 직장에 도착할 때까지 패딩은 멀쩡했다. 결국 실체도 없는 오인·허위 신고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여혐범죄가 일어난 것처럼 포장된 셈이다.

◆이수역 사건 “최초 시비 남녀조차 연인 아냐”

최근 머리가 짧다는 등 여성혐오를 이유로 남성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주장해 이슈가 됐던 ‘이수역 폭행’ 사건도 경찰 수사로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일행은 최초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지난해 11월13일 오전 4시쯤 이수역 인근 맥주집에서 아무 관련 없는 남성 3명에게 먼저 폭행과 휴대폰 불법 촬영을 당했고 경찰은 늑장출동으로 현장에 오는데 30분이 걸렸으며 남성들과 분리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여성일행 중 1명은 계단에서 남성들에게 발로 차여 날아가 머리뼈가 드러날 정도로 중상을 입고 입원 기간 내내 뇌진탕으로 구토에 시달렸다고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된 이수역 폭행 직전 상황으로 추정되는 영상.

경찰 수사는 달랐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 남성이 여성을 발로 찬 증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경찰은 또 먼저 폭행을 시작한 것도 여성일행이고 휴대폰 촬영을 시작한 것도 여성일행이라고 밝혔다. 폐쇄회로(CC)TV 검토에서 경찰은 신고를 받은 지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고 분리조사도 철저히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최초 이송된 병원에서는 입원을 거절당해 여성일행이 주장한 정도로 부상이 크지 않았다는 것도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남성일행과 여성일행 모두 쌍방폭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고 상해 혐의가 적용된 남성 1명과 여성 1명은 각각 상대방에게 똑같은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것으로 정리됐다.

더불어 세계일보 취재 결과 최초 여성일행과 시비가 붙었다는 남녀도 사실은 연인 사이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애인 관계로 알려진 남녀는 고향 동창이다. 사건이 있었던 날 동창 여러 명과 1차 자리를 갖고 2차를 위해 해당 이수역 인근 맥줏집으로 옮겼다가 하나둘 귀가해 여성일행과 시비가 붙었을 당시에는 남녀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성은 교제하는 남성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여성일행이 모욕성 발언을 한 것은 남녀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연인으로 착각한 것”이라며 “‘한남충(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인터넷 은어) 왜 사귀냐’는 등의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수역 폭행 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한 여성이 최초 인터넷 글에 게시한 사진.

이수역 폭행 사건은 여혐범죄로 인터넷상에 퍼져 이틀 새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에 30만명 이상 동의했지만 사실이 이들의 최초 주장과 대부분 다르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오히려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양치기 소녀’들 탓에 미투 폄훼

많은 시민들은 ‘이수역 폭행’이나 ‘패딩 테러’ 사건 등 일련의 거짓 여혐 사건들로 인해 정말로 국민적 공분을 사야 할 미투 사건들이 폄훼당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남성들이 여성 인권을 짓밟은 것으로 알려졌던 여러 사건들이 종래에 날조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투 사건들도 함께 도매금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대표적인 미투 사건은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조 전 대표는 심 선수를 17세부터 평창올림픽 개막 두달 전까지 약 4년 가까이 성폭행해 강간상해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다. 이후 전 유도선수 신유용씨가 고교시절 코치로부터 5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사실도 재조명됐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

직장인 유모(38)씨는 “여성이 한 폭로라고 하면 이수역 폭행 사건이나 패딩 테러 사건이 먼저 생각난다”며 “심석희 사건 역시 다른 날조 사건처럼 거짓으로 드러날까봐 처음에는 선뜻 동조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유씨는 이어 “나처럼 고민하는 시민들이 많아지면 미투운동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늘 수밖에 없다”며 “그 사이 정말 도움이 필요한 미투 피해자들이 실망하고 다시 과거의 굴레 속으로 들어갈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주부 이모(30·여)씨도 “심 선수를 비롯한 미투 피해자들이 폭로를 하기 전에 느꼈을 무수한 갈등과 두려움을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고 공감한다”며 “이들에겐 폭로의 공포를 다독여 줄 수 있는 국민 모두의 믿음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울먹였다. 이씨는 이어 “SNS상에 올린 글은 온 국민에게 공유된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글을 올려 공론화하기 전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사실관계가 맞는지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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