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둥이’를 키우고 있는 김지현(34·가명)씨는 3년 전 가까스로 임신에 성공했다. 평소 건강에 자신이 있던 김씨는 병원에서 난임 진단을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이후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니며 난임 검사와 시술을 받았지만 녹록지 않았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김씨는 병원 시술을 위해 매번 서울로 올라와야 했고, 과배란 유도제를 맞는 4주 정도의 기간 동안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한 차례 유산을 겪은 김씨는 일을 그만 둔 뒤에야 임신에 성공했다. 김씨는 “지금 키우는 애들을 보면 그때의 힘든 기억도 충분히 보상받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컸다”고 토로했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부부가 1년 동안 자연 임신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 ‘난임’이라 부른다. 2016년 기준 국내 난임 진단자는 22만여명이다. 지난해 국내 전체 출생아 수인 32만6900명의 3분의2 수준이다. 출생아 수는 해마다 줄고 있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난임 여성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저출산의 역설’을 맞고 있다. 안타깝게도 난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정부의 지원은 부족한 편이다. 난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저출산 예산 23조원 중 난임 지원 예산은 0.1%도 안돼
역대 정부마다 저출산 현상을 국가 차원의 심각한 문제로 보고 다양한 지원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문재인정부도 지난해 대대적인 저출산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난임 부부를 위한 정책은 소홀했다. 정책의 초점이 이미 임신을 했거나 출산을 한 경우에 맞춰진 탓이다.
1일 정부의 예산안을 살펴보면 올해 저출산 정책 관련 예산만 23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중 난임에 대한 지원은 연구용역비 2억원을 포함해 187억원 수준이다. 전체 저출산 예산 중 난임 지원 예산이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도 난임 부부에 대한 지원 정책을 일부 펼치고 있긴 하다. 2017년부터 만 44세 이하 여성의 시험관 시술과 인공수정을 총 10회까지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시술비의 30%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난임 시술 비용이 1회에 400만∼500만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본인 부담이 120만~150만원이나 되는 셈이다. 정부 지원은 신선배아 체외수정 4회, 동결배아 체외수정 3회, 인공수정 3회 등으로 구분돼 개개인이 10회까지 모두 지원받는 것은 아니다. 특정 시술을 여러 차례 받아야 하는 경우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난임 부부에 대한 사회적 배려도 부족하다. 지난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난임휴가를 1년에 3일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실제 난임 시술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난임 시술은 1사이클에 3∼5회가량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데다, 시술 후에도 안정기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최소 일주일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부 회사에서는 난임휴가를 쓴다고 하면 난색을 보이는 경우도 많아 당사자들은 3일도 쓰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신체·경제 부담만큼 정신적 어려움도 상당해
난임 부부 상당수는 심리적 어려움도 호소하고 있다. 일례로 난임 여성 상당수는 정부의 난임 지원이 만 44세 이하 여성을 대상으로만 이뤄진다는 부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실제 임신 가능성은 만 44세 이하인 경우가 많지만, 정부의 기준이 난임 부부들에게 심리적 압박이 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난임정책 토론회에서 네이버 카페 ‘불임은 없다. 아가야 어서오렴’의 회원 김모씨는 “만 44세를 넘어가면 시험관 성공률이 낮아지지만, 만 44세 이후에도 성공한 사례가 있다”며 “만 44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불임이라고 낙인찍지 말아 달라”고 촉구했다.
난임 부부 상당수는 스트레스나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난임가족연합회 소속 A회원은 “시술 결과를 기다리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며 “배우자도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몇차례 실패하고 나니 시술에 앞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거나 “시험관으로 살찌고 예민해지는 것이 힘들었다”는 사례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조사에서 난임 시술을 받은 여성 303명이 느낀 가장 어려운 점은 ‘정신적 고통과 고립감’(41.0%)이었다. 난임의 실질적 어려움으로 알려진 ‘경제적 부담’(25.9%), ‘신체적으로 힘들어서’(24.6%)보다 높았다. 2016년 또 다른 조사에서는 난임 시술을 받는 여성의 27∼29%가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에서 고위험군의 증세를 보였다.
◆“난임부부 위한 지원체계 강화 시급”
결혼하는 시기가 늦어지면서 난임 진단을 받은 부부는 해마다 늘고 있다. 난임으로 인한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부담이 상당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난임에 대한 연구나 지원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황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6년 조사에서 난임 시술을 지원받은 여성 434명 중 59.7%가 시술을 받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며 “직장 여성을 위한 난임휴가제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위원은 “매년 20만여명이 난임 진료를 받는 현실에서 조기에 의료기관 상담 및 치료가 가능하도록 시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난임 부부를 위한 의료, 보건, 사회적 지원체계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춘선 한국난임가족연합회 회장은 “난임은 사회의 구조적, 환경적 요인 등에 의해 발생한다”며 “정부가 난임 부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창구를 마련하고,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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