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질 이미지로 국내에서도 소비자층이 두터운 일본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의 일부 제품이 후쿠시마 공장에서 제조됐다는 논란이 뜨겁다. 일각에선 ‘무인양품 불매운동’까지 거론되며 소비자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지만 정작 일본 무인양품 본사와 국내 수입사는 뒷짐만 지고 있다. 해당 제품들이 국내 정식 수입 통관 절차를 거쳤고 법률상 후쿠시마산임을 표기해야 할 의무도 없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후쿠시마산 무인양품 플라스틱 제품, 한국에까지 수출
온라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는 ‘후쿠시마 플라스틱’ 논란의 발단은 약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무인양품 글로벌(MUJI Global)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Polypropylene Storage(폴리프로필렌 수납함)’이란 제목의 영상에 소개된 후쿠시마현 니시시라카와군(Fukushima Nishishirakawa)에 있는 무인양품 공장이 최근 들어 주목을 받은 것이다. 니시시라카와군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약 113km 정도 떨어진 지역에 있는 곳이다.
영상은 무인양품의 대표상품인 폴리프로필렌 소재로 만든 플라스틱 수납함의 제작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국내에서도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제품이다. 영상에는 수납함 외에도 파일 케이스, 필통, 물통 등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다양한 제품이 등장한다.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도중 등장한 돌돌 말린 라벨지에는 ‘PP수납 케이스’, ‘가로와이드’ 등 한글이 선명히 적혀있다. 해당 제품이 한국으로도 수출됨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무인양품 공식 블로그에는 ‘폴리프로필렌 제품은 100종류 이상으로 유럽 MUJI에서 주력 상품으로 꼽힐 만큼 인기를 얻어 싱가포르, 태국, 한국에도 출시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소비자 불안감 급증... 무인양품 “환불 불가, 고지 의무 없어”
세계일보는 지난달 18일 보도한 ‘무인양품 ‘후쿠시마산’ 플라스틱 논란… 수입사 “묵묵부답”’ 기사에서 후쿠시마 공장에서 생산된 플라스틱 물통에 대해 전했다. 무인양품 매장에서 판매 중인 냉수용 플라스틱 물통 라벨지에 제조사가 ‘GIFU PLASTIC INDUSTRY CO, LTD FUKUSHIMA FACTORY’, 즉 후쿠시마에 위치한 기후 플라스틱 공장이라 적혀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기사를 보고 무인양품 측에 제품 환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소비자 제보도 들어왔다. 프리랜서인 박세린(29)씨는 “평소 수납할 게 많아 무인양품 수납함을 수십만원어치 구매해 쓰고 있었다”며 “기사를 보고서야 후쿠시마산인 줄 알았다. 제품을 샀던 무인양품 홍대점에 먼저 환불 요청을 했는데 본사에 물어보고 답변을 준다 하더니 답변이 안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는 답답한 마음에 본사로 직접 연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사에선 환불을 거절했다. 법적으로 굳이 후쿠시마산임을 알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에까지 연락했지만 “무인양품에서 환불해 줄 이유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박씨는 “물통과 달리 수납함에는 후쿠시마란 말은 전혀 없이 ‘메이드인 재팬(Made in Japan)’이라고만 적혀있었다”며 “후쿠시마산인 걸 알았으면 안 샀을 거다. 이 부분을 무인양품 측에서 고지하지 않은 게 가장 화가 난다. 주변에도 무인양품 사지 말라고 얘기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방사능 검사 관련 부처들... 서로 “우리 소관 아니다”
현재 일본 수입 제품의 방사능 검사, 통관, 원산지 표시 등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관세청,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여러 부처가 얽혀있다. 이 때문인지 방사능 검사에 대해 문의하자 서로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며 떠넘기는 모습도 보였다.
관세청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무인양품 후쿠시마 논란에 대해 알고 있다. 무인양품 통관 실적을 파악하는 등 현안을 살펴보고 있다”며 “다만 방사능 관련 주관 부처는 원안위다. 원안위가 1차로 전국 공항만에 설치한 방사능 감지기로 검사를 한다. 관세청은 검사필증, 공산품 품질 인증 등 수입신고서에 기재된 사항을 확인 후 통관을 해주고 있으며 일부 화물을 선별해 방사능 검사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논란이 큰 만큼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무인양품 제품의 표면방사선량 검사를 검토하고 있다고도 했다. 한편 원안위 측은 관세청이 방사능 검사 소관 부처라고 전했다.
◆산자부 “지역 표시하려다 무역 분쟁 비화할 수도”
대외무역법상 수입 공산품의 원산지는 국가만 표시해도 문제가 없다. ‘후쿠시마산이라고 밝힐 의무가 없다’는 무인양품 측 주장의 근거다.
방사능 오염이 불안한 국민들은 법률을 개정해 후쿠시마산임을 밝히길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난감한 입장이다. 자칫 국가 간 무역 분쟁으로까지 비화할 여지가 있다는 거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다. 즉 자유무역주의가 원칙이다. 특정 국가에서 들어오는 물품에 대해 그 생산 지역까지 표시를 해야 한다고 제재하면 특정국에 대해 일종의 표시 규제를 하는 거니 무역에 대한 제한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WTO 규정상 규제법 개정 전 해당 내용을 WTO 사무국에 통보해야 한다고도 했다. 관계자는 “전체 회원국에 최소 60일 이상 회람을 돌려야 한다. 일본 같은 경우 당연히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타국도 ‘우리는 안 하는데 왜 한국만 제한하냐’, ‘자유무역에 반한다’ 등의 의견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WTO 측에서 법령 개정에 반대하면 이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통상 마찰의 가능성 때문이다.
관계자는 “또한 반대로 우리가 법률을 개정하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도 수출 시 지역 표시를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우리 기업에도 부담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연유로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생산 지역까지 밝히는 내용의 법률이 발의됐으나 국회에 계류된 상태라고도 전했다.
◆전문가 “원재료 생산지 어디인지가 중요”... 일본 무인양품, 답변 거부
후쿠시마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이관엽 한국원자력연구원 실장은 지난달 27일 통화에서 “생산 공장이 후쿠시마 지역에 있으니 사람들이 걱정하는 걸 거다. 그런데 토양이나 물의 영향을 받는 식품이 아니고서야 단지 그 지역에서 생산됐다고 제품에 방사능 물질이 포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장에서는 원료를 갖다가 모양대로 찍어내는 역할만 하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플라스틱 원료 자체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원료 공장이 원전 사고 지역에 있다면 방사능 오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 무인양품 제품을 수입해 독점 공급하는 곳은 무인양품 코리아(MUJI KOREA)로 일본 모회사인 양품계획 60%, 롯데상사 40%인 합작 회사다.
세계일보는 국내 수입사인 무인양품코리아 측에 제품과 원료의 원산지에 대해 지난달 13일부터 지속적으로 문의했지만 매번 “알아보고 연락해주겠다”는 말뿐, 전혀 답변이 오지 않았다.
이에 무인양품 일본 본사인 양품계획 쪽에 연락했다. 지난달 23일 양품계획 측은 “현재 폴리프로필렌 수납함을 포함한 특정 제품 관련해 일부 보도가 이어져 방사능 오염에 대해 문의를 여러 차례 받고 있다”며 “무인양품은 폴리프로필렌 수납함을 포함한 특정 제품을 후쿠시마현 니시시라카와군의 공장에서 제조하고 있다”고 명확히 했다.
그러면서 “다만 후쿠시마현 니시시라카와군은 지금까지 방사능 오염에 의한 피난 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으며 현재 방사능 오염이 있다는 정보도 없다”고 알렸다. “한국 정부 쪽에서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공산품에 대한 수입 금지나 인증서 첨부 등의 요구도 없다”며 “한국 관련 법령에 의거 제대로 수출했으며 적정하게 판매를 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앞으로도 한국 법률을 준수할 것이며 품질 관리에 철저히 임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폴리프로필렌 원료의 생산지가 어디냐’는 질문에는 “개별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고 답변을 피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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